3040 월급 모아 클럽 산다…골프 덕후들의 로망 간·지·채

입력 2020-11-05 17:09   수정 2020-11-06 01:44


1900년 영국인들이 원산 세관 구내에 6홀 코스를 만든 것이 한국골프의 ‘시초’다. 대중에게 골프가 보급된 것은 1924년 경성골프구락부가 결성되면서부터. 50여 명이던 골퍼는 그사이 10만 배인 500만 명으로 불어났다. 100여 년 만의 상전벽해 속에서도 골프에는 여전히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한다. 즐길 수 있느냐가 당시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무엇을 쓰느냐가 기준이다.

예컨대 타이틀리스트와 캘러웨이는 알지만 조디아(Zodia), 장밥(Jean Baptist)은 모르는 경우다. 전자가 ‘에버리지 골퍼’의 세계라면, 후자는 ‘골프 덕후’의 세계다. 퍼터 하나를 구하기 위해 밤사이 대한해협을 건너고, 아파트 한 채 값을 털어 골프세트를 사들이는 이들이 ‘그들만의 세계’에 빠진 골프 덕후들이다. 앤티크 마니아인 이인세 골프 칼럼리스트는 “퍼시몬(감나무) 드라이버를 휘두르면 200년 전의 세계로 돌아간 듯한 특별한 감정을 체험한다”고 했다.

요즘엔 ‘럭클(럭셔리 클럽)’, ‘갠지클럽(Ganzi club)’이라고 불리는 고가 클럽에 선뜻 지갑을 여는 30~40대 골퍼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PXG 관계자는 “반년치 월급을 모아 ‘일시불’로 클럽을 사가는 회사원 고객들도 있다. 마치 캐릭터 인형을 대하듯 골프채에 감정이입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풀세트가 1600만원쯤 하는 PXG는 ‘골프장에서 잃어버리면 절대 못 찾는 클럽’으로 이름이 나 있다. 디자인과 스토리가 강렬해 많은 이들이 갖고 싶어 하는 ‘갠지 잇템’이기 때문이다.

세트 하나가 수천만원에 달하는 럭셔리 클럽은 수제 맞춤클럽이 대다수다. 덕후들은 클럽 헤드는 물론, 샤프트, 그립, 심지어 페럴(ferrule·헤드와 샤프트를 잇는 플라스틱 부분)까지 골라 끼우는 ‘풀 커스터마이즈’를 선호한다.

프리미엄 브랜드 클럽 편집숍인 판교골프피팅 관계자는 “엄청난 부자이면서도 한 세트에 수십만원 하는 보급형 골프채를 선호하고, 연봉 수천만원인 회사원이지만 1000만원짜리 아이언에 꽂히는 게 골프용품 시장의 아이러니”라며 “소비자들은 단순히 비싼 가격뿐만 아니라 클럽을 만드는 소재와 디자인, 브랜드 스토리 등 지갑을 여는 자기만의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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