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시대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때와는 달리 다자주의 통상 질서가 회복될 것입니다. 다만 미·중 분쟁은 이어질 것이며 베트남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아 한국 기업들에 녹록지 않은 상황이 이어질 겁니다.”
국내 최고 통상 전문가들은 바이든 후보의 당선이 세계 경제와 통상 질서, 그리고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이처럼 전망했다. 8일 서울 중림동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열린 긴급 토론회에서다. 이 자리에는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이동근 현대경제연구원장, 김흥종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이 참석했다. 사회는 박준동 한국경제신문 경제부장이 맡았다. 참석자들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미·중 무역분쟁과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이 무역분쟁에서 해결 카드로 내밀 것은 트럼프 때의 무차별 관세 인상에서 반덤핑 제소 등의 ‘정밀 타격’으로 바뀔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졌다.
▷이동근 원장=바이든이 소속된 미국 민주당과 트럼프의 경제 정책 기조에는 공통점이 많다. 제조업 지원과 리쇼어링(기업 국내 복귀)을 중시한다. 반면 결정적인 차이점은 바이든 후보가 다자 무역체제 등 기존 통상 질서를 존중한다는 것이다. 바이든의 환경·노동 규제 강화 기조가 미국 경제를 통해 세계 경제 성장에도 일부 악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무역 환경이 안정된다는 효과가 크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보면 세계 경제가 안정될 것으로 본다.
▷김흥종 원장=바이든 당선으로 세계 모든 경제주체들의 예측 가능성이 훨씬 높아진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트럼프가 탈퇴한 주요 국제협약만도 8개에 달한다. 미국이 다시 국제 사회 논의의 장에 돌아오는 것만으로도 불확실성이 크게 줄어든다. 다만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바이든도 디지털세 등 미국 기업에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이슈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미·중 무역분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하나.
▷박 원장=바이든 행정부에서도 대(對)중국 압박을 강화한다는 기조는 트럼프 때와 같을 것이다. 다만 접근 방법이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 독자적으로 관세를 부과하고 제재를 가하는 방식을 택했다. 반면 바이든은 아직 구체적인 발표는 없지만 동맹국과 연합해 좀 더 체계적으로 중국을 압박할 것으로 관측된다. 첨단 기술 및 지식재산권과 관련해 중국의 불법적이고 불공정한 무역·정책·제도·관행 등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호주 등은 압박에 동참해 달라는 요청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 원장=미국 민주당도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중국의 불공정 무역정책 등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는 입장이다. 오히려 중국이 미국의 지식재산권과 특허 등을 가로채는 데 대해서는 트럼프보다 강한 반격을 가할 가능성도 있다.
▷김 원장=바이든은 통상과 인권을 연계해 중국을 압박할 계획이다. 국제 사회에 중국 내 인권 탄압 문제 등을 계속 제기하면서 동맹국들에도 동참하라고 할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의 중국 압박 수단은 더 많아지게 된다. 친환경산업에 관심이 많은 바이든이 중국 정부의 태양광산업 보조금 살포에 대해 공식적인 문제 제기를 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지금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문제 제기가 되고 있지 않지만, 본격적으로 관련 논의가 시작되면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사회=미·중 무역분쟁이 이어진다면 아시아엔 어떤 영향이 있겠나.
▷김 원장=베트남이 가장 크게 영향받을 가능성이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베트남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중국 기업들의 베트남을 통한 우회 수출 규모가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는 베트남 중앙은행의 달러 매입 등 관련 이슈를 들여다보고 있다.
▷박 원장=바이든 정부의 친환경·친노동 기조가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에 무역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 민주당이 농업 육성과 농민 보호를 강조하기 때문에 한국에 대한 농산물 수출을 늘리려고 할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장기적으로 바이든의 소득세 인상이 미국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줄이면서 가전·자동차 등 소비재 수출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원장=바이든 당선으로 주한미군 주둔비 문제가 합리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보이는 것은 긍정적이다. 바이든이 전통적 동맹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다만 남북한 관계는 큰 진전 없이 지금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 바이든은 6자회담 등 단계적인 절차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는 바이든이 동맹국 간 관계를 개선하라는 요구를 할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
▷사회=한국 정부는 바이든 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김 원장=미국이 개별 기업을 대상으로 반덤핑 제소를 늘릴 공산이 크다. 우리 통상당국도 잘 준비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베트남 제재와 관련해서도 한국 기업의 투자 및 진출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정부가 예의 주시해야 한다.
▷박 원장=미국이 다자 무역체제로 돌아올 것은 한국에 확실히 긍정적이다. 문제는 미·중 분쟁이다. 한국이 계속 줄타기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 정부는 시장경제와 자유무역을 지지한다는 원칙을 천명해야 한다. 그래야 미·중 사이에서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개별 정책 중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그린뉴딜 정책과 바이든의 청정에너지 투자 등 양국의 공통점이 많다. 미국의 투자 및 개발에 한국도 참여해 이익을 볼 수 있도록 미리 협력할 만한 분야를 개발하고 이를 제시해야 한다.
▷이 원장=정부로서는 기존 한·미 관계의 틀이 복원되는 만큼 외교 영역이 넓어진다. 그만큼 선택을 내려야 할 순간도 많아질 텐데, 기업 환경이 안정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위험을 회피하는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여러 채널을 구축하고 고위 당국자가 최대한 빨리 미국을 방문해 협력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정리=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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