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일본 최고 명문 도쿄대의 입학시험을 치른다면?’
구글이 개발한 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4 대 1로 꺾으면서 인류에게 충격을 준 2016년 3월, 일본에서는 AI를 도쿄대에 입학시키는 프로젝트가 한창이었다. 일본 국립정보학연구소(NII)가 개발한 AI 도로보군이 주인공이다. 도쿄대의 ‘도’와 ‘로봇’, 어린 남자의 호칭인 ‘군’을 합쳐서 지은 이름이다. 2011년 시작해 연구자만 100명 넘게 투입된 이 프로젝트는 2021년까지 도로보군을 도쿄대에 합격시키는 것이 목표다.
다시 이목이 집중된 것은 작년 11월 한국의 수능시험격인 대학입시센터시험 영어 과목에서 200점 만점에 185점(표준점수 64.1)을 받으면서다. 2016년 모의고사에서 95점을 받은 데 비해 성적이 두 배 가까이 올랐다. 딥러닝을 통해 문장 해독 기술이 크게 진전된 덕분이다. 도로보군은 이제 문장 전체를 몇 초 만에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도로보군의 기사회생은 일본 AI산업의 발전 과정을 닮았다. 일본은 2010년까지 AI의 핵심 기술인 양자계산기 분야에서 세계 최고였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에 주도권을 내준 뒤 세계 정상권에서마저 밀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높아지자 AI 경쟁력을 되찾는 데 절치부심하고 있다. 2015년부터 AI 관련 연구가 급증해 2018년 특허 출원이 전년 대비 54.3% 늘어난 4728건에 달했다. 딥러닝 관련 특허는 2474건으로 5년 만에 137배 증가했다.
신약 개발에서 AI는 보조자의 역할을 넘어 신약 물질을 자체적으로 찾아내는 단계까지 진화했다. 지난 1월 일본 다이니폰스미토모제약과 영국 스타트업 엑스사이언티아는 AI가 찾아낸 신약을 세계 최초로 임상시험에 투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회사가 개발한 AI는 1년 만에 수십억 개에 달하는 신약 물질 중 적절한 분자를 찾아냈다. 인간이라면 5년 넘게 걸릴 일이었다. 앤드루 홉킨스 엑스사이언티아 최고경영자(CEO)는 BBC에 “인체 진단과 자료 추출 등에 활용되던 AI가 신약을 개발한 건 세계 최초”라고 말했다.
AI는 일본 농가의 고질적인 인력 부족을 해결하는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스타트업인 이나호의 채소 수확 로봇은 적외선 센서와 가상인식 기능을 활용해 수확기 작물을 골라낸다. 잘 익은 아스파라거스를 판별하고, 로봇 팔을 이용해 바구니에 담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12초다. ‘AI 로봇은 비쌀 것’이라는 농가의 인식이 바뀌면서 상업화에 성공했다. 초기비용이 없고 수확량의 15%를 이용료로 받는 렌털 서비스를 활용한 덕분이다. 히시키 유타카 사장은 “인식률과 수확 속도를 높이고 전국적인 정비망을 구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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