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시가격 인상 정책 후폭풍으로 보유세뿐 아니라 건강보험료도 크게 뛰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1주택자의 경우 앞으로 5년간 건보료가 100만원 이상 상승하는 사례가 속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보료가 급증하면 소득이 변변치 않은 은퇴자에게 특히 타격이다. 은퇴자 사이에서 "평생 일한 돈을 모아 집 한 채 산 게 그렇게 큰 잘못이냐"는 아우성이 커지는 이유다.
하지만 A씨 건보료는 △내년 360만9000원 △2022년 385만8000원 △2023년 412만원 △2024년 439만5000원 △2025년 465만8000원 등으로 오른다. 앞으로 5년간 105만7000원(29.4%) 급증하는 것이다. 2025년엔 건보료료만 연금 소득의 43%가 날아간다. 이는 △건보료율이 매년 3.2%씩 인상되고 △주택 시세가 연평균 5%씩 오른다는 전제 아래 추산한 결과다. A씨는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도 올해 918만원서 2025년 3439만원으로 급증한다.
서울 마포구에 시세 15억원짜리 아파트에 사는 B씨(월 연금소득 90만원) 역시 연간 건보료가 올해 303만1000원에서 2025년 408만6000원으로, 100만원 이상 뛴다.
건보료가 급증하는 첫째 이유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이른바 '문재인 케어' 때문이다. 문재인 케어는 모든 의료서비스를 건보로 지원하겠다는 정책이다. 막대한 재원이 들기 때문에 건보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실제 보건복지부는 작년 '국민건강보험 종합계획'에서 앞으로 매년 건보료율을 3.2%씩 올리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은퇴자와 자영업자 등 건강보험 지역가입자는 공시가격발(發) 건보료 상승까지 겹쳤다. 건보료를 매길 때 소득만 보는 직장가입자와 달리 지역가입자는 재산까지 반영한다. 재산보험료는 주택 공시가격이 기준이 된다. 그런데 정부가 공시가격을 대폭 끌어올리겠다고 나서면서 건보료 증가가 불가피해졌다. 국토교통부는 지난 3일 주택 공시가격의 시세 반영률(현실화율)을 올해 54~69%에서 5~10년 안에 90%까지 올리겠다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발표했다. 문재인 케어에 공시가격 인상 정책이 기름을 부은 셈이다.
건보료가 시뮬레이션보다 더 가파르게 오를 가능성도 있다. 서울·수도권은 주택 시세가 연평균 5%보다 더 많이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지난 5년간(2015년 10월~올해 10월) 연평균 10.2%씩 상승했다. 최근 시세가 급상승한 전용면적 120㎡ 도곡레슬의 경우 공시가격이 2018년 12억원에서 올해 19억9700만원으로 올랐다. 이 아파트에 사는 지역가입자는 건보료가 2018~2020년에만 84만원 뛰었다.
중저가 주택 보유자는 상대적으로 건보료가 덜 오르지만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다. 시세가 6억원인 아파트 한 채를 보유하고 소득이 없는 사람은 건보료가 올해 199만8000원에서 2025년 243만5000원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5년간 43만7000원 오르는 셈이다.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 보유자는 재산세 인하 혜택을 받는다. 하지만 건보료는 이런 혜택이 없어 부담 증가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한국퇴직자총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번듯한 집을 가진 은퇴자들도 소득은 쥐꼬리만한 연금에 기대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집값이 올라도 소득이 오르는 게 아닌데, 징벌적 수준으로 보유세, 건보료를 부과하면 무슨 돈으로 내라는거냐"고 비판했다.
공시가격 인상의 후폭풍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공시가격은 재산세와 건보료는 물론 기초연금, 기초생활보장제도, 국가장학금 등의 지급 기준으로도 쓰인다. 공시가격이 많이 오르는 주택 보유자는 가만히 있다가 복지 수급 자격을 박탈당하는 사례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기초연금의 경우 공시가격 상승으로 작년 1만6000명의 기존 수급자가 혜택을 잃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시가격을 시세보다 낮게 책정하는 데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며 "1년에 한 번 정하는 공시가와 달리 시세는 수시로 변하고, 매년 실거래되는 주택은 전체 4~5%에 불과해 나머지 주택은 시세를 정확히 알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점을 다 무시하고 공시가격을 무조건 시세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는 정책을 펴면 부작용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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