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두 해 불꽃 삶을 살다간 전태일 열사 50주기가 코앞(13일)이다. 취학 기간이 5년에 불과해 ‘무학’에 가까웠던 전태일은 이제 ‘사상가’로 재조명받는다. 노동과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 ‘다른 세상’을 꿈꾼 남다른 비전 등에서 어떤 구도자보다 심오하고 철저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는 그의 외침은 50년간 우리 머릿속을 지배하며 민주주의를 추동해냈다.
‘무산자 독재’ ‘토지 공유’ 같은 시대착오로 치닫는 ‘먹물’의 득세도 기막히다. ‘정당한 노동가치’ ‘인간적인 삶’이라는 열사의 화두는 생계형 운동가들에 의해 ‘노동특권’ ‘무(無)노동 유(有)임금’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사상가 전태일’의 부활에 맞춰 다른 한 사람의 사상가가 우리 곁을 떠났다. 뉴욕타임스는 이건희 삼성 회장을 ‘원대한 방향을 제시한 큰 사상가’로 기렸다. 후진국의 30대초입 청년이 아버지와 비서실의 반대에도 사재를 털어 반도체 승부에 뛰어든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두 세대 전인 1974년의 일이다. 이후 “마누라와 자식 빼고 전부 바꿔보자”던 프랑크푸르트 선언(1993년), 갤럭시 신화의 초석이 된 애니콜 화형식(1995년) 등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은 큰 울림이었다. “출근부 찍지 마라”는 20여 년 전 어록은 코로나 시대에 더욱 빛난다.
이건희는 전태일이 생명으로 갈구했던 ‘노동존중·인간존중 시대’의 가능성도 열어젖혔다. 삼성전자가 최근 포브스에서 발표한 ‘세계 최고(best) 고용주’ 순위에서 1위에 오른 것이다. 친구·가족의 추천 여부, 동종업계 평판, 직원 자부심, 사회적 책임 이행 등을 종합평가한 결과다. 가차 없이 자르고 노조도 막는데 무슨 소리냐고? ‘온정적 가족기업이냐, 인재 중시 글로벌 기업이냐’는 기업의 선택일 뿐 선악 판단의 대상이 아니다. ‘무노조 경영’ 역시 인텔 델타항공 등 해외 유수기업에서도 흔한 ‘비(非)노조 고용계약’ 형태일 뿐이다. 당연히 노동법상 단결권 침해나 불법이 아니며, 노동 경시는 더욱 아니다. ‘권-노(權-勞) 유착’을 강화해가는 자칭 ‘전태일 후예’들이야말로 ‘전태일 정신’에 기생하는 노동해방의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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