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모양을 봐도 좋지 않다. 의사당은 ‘배가 나아가는 형상(행주형·行舟形)’인 여의도에서도 물러설 곳 없는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런 곳에선 죽기살기식 싸움이 벌어지기 십상이다. 육영수 여사 묫자리 잡는 데도 풍수지리 전문가의 자문을 받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런 곳에 의사당 짓는 것을 “OK” 했으니, 호사가들 사이에선 “국회의원들이 싸우는 데 정신 팔려 국정에 신경을 못 쓰도록 그런 것”이란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풍수지리의 과학성을 인정하든 안 하든 여의도공원 서편(서여의도) ‘정치 1번지’에선 정권에 상관없이 여야가 싸우지 않는 날이 드물었다. 동여의도에 밀집한 증권사들 중 상당수의 주인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유로 여의도에 사무실이 있는 고위 공무원들은 나쁜 기운을 막는다며 가구를 재배치했고, 한 증권사 대표는 “배 밑에선 엔진이 힘차게 돌아야 한다”며 사옥 꼭대기에 있던 직원식당을 지하로 옮기기도 했다.
이처럼 얘깃거리가 많은 여의도에서 터줏대감 격인 국회의사당을 어쩌면 못 볼지도 모르게 됐다. 여당이 국가균형발전을 명분 삼아 세종시로 이전을 재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워낙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정치권은 물론 풍수지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화제다. 대개는 “정치적 혼란을 끝내려면 옮기는 게 좋다”는 의견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권 잡는 데 눈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풍수지리로 바꿀 수 있을까. 삼권분립 같은 헌법가치가 허물어지고 ‘편 가르기’가 횡행하는데도 대통령과 거대 여당의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민심이 이런데 야당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한술 더 떠 반(反)시장 포퓰리즘 경쟁에 합류한 판이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4류 정치의 불편한 진실을 가리기 위해 풍수지리를 핑계로 삼은 것은 아닐까.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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