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선 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칠 때 토론이 없어요. 사건을 시간순으로 단순 나열하고, 학생들에게 외우기만 하라고 강요합니다. 역사 속 ‘실패한 선택’의 원인을 분석한 경험이 없으니 현재의 급박한 국제질서 재편 앞에서 답을 못 찾고 있습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사진)은 지난 11일 서울 대치동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최근 신간 《역사가 당신을 강하게 만든다》를 펴냈다. 17세기 명·청 교체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해상 무역을 금지했던 조선의 해금(海禁)정책, 1905년 미국과 일본이 맺었던 가쓰라 태프트 밀약 등 우리 역사 속 18개 사례를 꼽고, 그 의미를 전략적 관점에서 다시 바라봐야 한다고 제안한 책이다.
최 전 장관은 “5년 전부터 책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전작 《워싱턴에서는 한국이 보이지 않는다》에서 미래 제언 중 하나로 ‘역사교육을 바꿔야 한다’를 꼽았어요. 이번 책은 그걸 구체화한 겁니다. ‘자랑스러운 역사’만을 강조하는 건 결코 이롭지 않으니까요.”
기술을 천시한 조선이 한 예다. 16세기 초 연산군 재위 시절 양인 김감불과 장례원, 노비 김검동이 은광석에서 순수 은을 추출하는 제련기술인 연은분리법을 발명했다. 하지만 이 기술은 당시 조정이 ‘사치 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를 내세워 은광 개발을 억제하면서 제대로 사용되지 못했다. 연은분리법은 일본으로 흘러가 꽃을 피웠고, 일본을 세계 1위 은 생산국으로 올려놨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죠. 하지만 나라의 명운이 달린 갈림길에서 조상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더 나은 방안은 없었는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본의 은 생산이 훗날 세계 무역에 굉장히 큰 영향을 줬잖아요.”
‘고구려와 백제 중 어느 쪽이 먼저 멸망했느냐’만 가르치는 현실도 꼬집었다. 최 전 장관은 “백제가 660년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멸망 위기에 놓였을 때 백제와 동맹 관계였던 고구려가 왜 아무 반응을 안 했는지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동맹의 본질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내용이 우리 역사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며 “암기식 문제만 접한 학생들은 전략적 사고능력을 갖출 수 없고, 이는 전략적 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귀결된다”고 역설했다. 최 전 장관은 “‘역사 기록의 소비자’로서 ‘역사 기록의 생산자’들에게 전략적 사고의 토대를 마련해달라고 요청하고 싶었다”며 “역사를 공부하면서 얻는 전략적 사고방식이 가정, 기업, 관료사회 등 세상 모든 곳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 하와이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1978년 행정고시 22회로 관계에 입문해 재정경제부 국제금융국장, 기획재정부 제1차관,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을 거쳐 지식경제부 장관(2011년)을 지냈다.
“역사학자만 역사책을 내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가전제품 기술자들이 주부의 평가를 귀담아 듣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그런 ‘주부의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경제와 외교정책의 현장에서 본 역사 교육의 힘이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한울엠플러스, 240쪽, 1만9000원)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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