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창업주이자 세계 패션의 전설적 아이콘으로 꼽히는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평전 《코코 샤넬》이 출간됐다. 저자인 론다 개어릭은 미국 패션 관련 명문대 파슨스더뉴스쿨의 예술디자인역사이론학부 학장이다. 그는 샤넬의 일대기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다룬다. 여성을 코르셋에서 해방시킨 선구자이자 냉혹한 일 중독자, 기회주의자 등 샤넬이 지녔던 다양한 면모를 소개한다.
저자에 따르면 샤넬은 패션이 곧 연극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의상과 머리 모양, 화장으로 ‘입을 수 있는 인격’ 등 샤넬 자신만의 배역을 공들여 설정했다. 세계 여성이 간절하게 연기하고 싶어한, 잊을 수 없는 캐릭터를 발명한 셈이다. “사람들이 ‘샤넬’이라고 인식하는 것의 일부는 패션을 초월하고, 심지어 샤넬이라는 인물조차 초월하는 정체성이 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샤넬은 남들이 좇을 수 있는 영웅적 여성상을 제시했다.
샤넬은 “나는 전 세계에 옷을 입혔다”고 자부했다. 카디건 스웨터, 플랫 슈즈, 리틀 블랙 드레스는 스타일의 기본이 됐고, 지금도 연령을 초월한 수많은 여성이 샤넬을 입는다. 저자는 “여성들은 샤넬이 마법처럼 불러낸 해방 판타지를 강력히 요구했다”고 짚는다. 또 “샤넬의 옷을 입는 일은 샤넬을 입는 일, 코코 샤넬의 개성 자체를 받아들이는 일과 뒤섞이기 시작했다”며 “샤넬은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지만, 곧 모두가 샤넬을 닮아갔다”고 덧붙인다.
샤넬은 평생 한 번도 결혼한 적이 없다. 하지만 에티엔 발장, 아서 에드워드 보이 카펠 등 여러 남성과 사랑을 나눴다. 연인들로부터 디자인과 사업 아이디어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애인과 친구를 통해 예술·정치·역사적 견해와 지식, 육체적 우아함과 재능, 그리고 새로운 스타일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출중한 패션디자이너란 명성 뒤에 가려졌던 샤넬의 어두운 모습들도 바깥으로 꺼낸다. 저자는 샤넬이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반(反)유대주의자였으며, 나치에 동조하고 협력해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전력을 공개한다. 그는 전쟁을 기회로 삼아 사업을 확장했고, 당대의 가장 강력한 국가와 동맹을 맺었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 나치 정권을 돕다가 고국 프랑스에서 쫓겨났지만, 이후 연합국 편에 서서 활동을 재개했다.
샤넬은 모두가 자신처럼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보육원 출신으로 한때 술집에서 노래하는 일을 하기도 했던 그는 노력 없이 아무것도 이뤄낼 수 없으며,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그걸 해내지 못하면 잘라내야 한다고 여겼다. 직원들이 자기 덕분에 생계를 꾸릴 수 있었으니 자신에게 절대적인 충성심과 감사함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동자의 권리와 노사 협상이라는 개념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일요일에도 쉬지 않았다. 자신의 힘으로 브랜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샤넬에게 ‘더 나은 노동 환경’에 대해 알려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그 자리에서 전부 해고하기도 했다.
책 후반부엔 저자가 샤넬 고위 임원들을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가 나온다. 샤넬 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샤넬은 곧 종교였다. 저자는 한 임원과 인터뷰하던 풍경을 전하며 책을 마친다.
“그날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샤넬 No.5의 향기는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마드무아젤의 아우라는 우리와 함께 있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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