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4차 산업혁명 '공공재'…잡무 맡기고 혁신에 전념해야"

입력 2020-11-12 17:48   수정 2020-11-13 01:07


유명 다이어트업체 A사는 인공지능(AI) 컨설팅을 도입한 이후 ‘매출과 수익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매출은 AI를 본격적으로 도입하기 전보다 107.4% 증가했다. 컨설턴트 한 명이 담당하는 가입자는 6.9명에서 8.4명으로 늘었고, 가입자의 재등록률은 36.3%에서 41.7%로 높아졌다. 이 회사 직원들은 “AI 도입 이후 직무에 더 몰입할 수 있게 됐다”고 호평했다. ‘나를 도와주는 어시스턴트(조수)’로 여기기 때문에 일자리 불안도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단순 반복 업무인 데이터 관리를 AI에 넘기고, 직원들의 업무분장을 촘촘히 ‘재설계’하는 데 집중한 결과다.

12일 서울 광장동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글로벌인재포럼 2020’의 ‘AI시대 주도권 잡기, 골든사이클에 올라타라’ 세션에서는 A사와 같은 ‘AI와 공존하는 성공사례’들이 소개됐다. 이찬 서울대 경력개발센터장은 “AI에 대한 지나친 불안감은 과장됐다”며 “AI에 맡길 일은 과감하게 던지고, 사람이 집중해야 할 영역을 찾아 그에 걸맞은 직업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AI에 잡무 넘기니 일할 맛 난다”
A사는 AI 도입에 앞서 서울대 경력개발센터의 도움을 받아 4단계 준비작업을 거쳤다. ①직무 분석→②직무 매핑→③직무 재설계→④직무 재창조의 과정이다. ①에서는 직원들이 참여해 조직이 해야 할 업무와 하고 있는 업무를 분석한다. ②는 AI와 사람이 할 일을 나누는 것이다. ③에서는 직원별 업무분장을 다시 정한다. ④는 부가가치를 추가로 창출하기 위해 기존 조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직무를 추가하는 단계다.

이 센터장은 “대다수 기업은 1·2단계에서 끝나는 게 문제”라며 “달라질 직무에 적응할 직업교육 훈련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고, AI 도입의 청사진도 구성원과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과제보다는 단순하고 똑같은 업무가 직원을 지치게 한다”며 “이런 일은 AI와 로봇에 맡길 때”라고 강조했다. 주요 산업마다 과거에는 중요했지만 미래에는 부가가치가 크게 떨어질 직무가 많아질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금쪽같은 주 52시간에, 형식적이고 불필요한 교육훈련을 제거하는 것도 경영진의 역량”이라며 “기업들의 직업교육 훈련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평생교육은 사치 아니라 필수”
전문가들은 AI와 인간이 한정된 일자리를 놓고 싸우는 관계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서용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미래 일자리를 놓고 ‘인간 대(對) 기계’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기계로 구성된 ‘팀 대 팀’ 간 경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서 교수는 “인터넷이 그랬듯 AI와 빅데이터도 ‘범용 공공재’가 돼가고 있다”며 “개인·기업·정부 모두 이런 공공재를 활용해 새로운 사업모델을 창출하는 것이 ‘골든 사이클’에 올라타는 지름길”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클 펑 싱가포르 스킬스퓨처 부대표는 “100세 시대에는 한 사람의 커리어가 5~6번씩 바뀌게 된다”며 “인생 초반 12년에 집중되는 기존 교육으론 4차 산업혁명의 파괴적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스킬스퓨처는 싱가포르 정부가 평생 직업훈련을 강화하기 위해 2015년 설립한 기구다. 펑 부대표는 “이제 평생교육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라며 “일과 공부를 병행하는 모델이 필요하고, 기업의 동참도 필요하다”고 했다. 나영돈 한국고용정보원장은 “결국 AI도 인간을 도와주는 기술의 하나”라며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고, 능동적으로 활용하자”고 강조했다.
“AI는 인간이 활용하는 도구”
‘AI시대, 직업지도가 바뀐다’ 세션에서도 비슷한 진단이 나왔다. 한상근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국가진로교육연구본부장은 “바둑계 사례를 보면 알파고 외에 한돌, 돌바람 등 다양한 바둑 AI가 공존·혼용되고 있다”며 “다른 분야에서도 복수의 AI를 활용해 인간의 선택권과 판단력을 확대하는 선순환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엽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는 “알파고 쇼크 이후 디자이너들이 카메라의 등장에 충격을 받았던 17세기 화가들과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면서도 “기술을 활용해 오히려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은 디자인의 영역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류중희 퓨처플레이 대표는 “우리 교육은 ‘공부를 잘하면 성공한다’고 강조했을 뿐 기계와 공존하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역할은 가르치지 않고 있다”고 현재 교육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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