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인 '강제 교체'에…대형 회계법인 꺼리는 기업들

입력 2020-11-12 17:47   수정 2020-11-13 00:43

신외부감사법 시행 이후 주기적 감사인지정제를 둘러싸고 회계감사 현장에서 마찰을 빚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정부가 지정해준 회계법인을 바꿔달라는 민원도 급증세다.

12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달 주기적 감사인지정 사전통지를 받은 220개 기업 가운데 수십 곳이 감사인 재지정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용 부담이 클 것으로 우려되는 대형 회계법인을 배정받은 기업들이 대부분이다. 지난해에도 정부로부터 외부감사 회계법인을 지정받은 855개 기업(주기적 지정 220곳 포함) 가운데 400곳 이상이 재지정 요청서를 냈다. 상당수 기업은 다른 회계법인으로 갈아탄 것으로 전해졌다.

감사인을 지정받은 기업은 1회에 한해 재지정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회계법인을 다시 배정받으면 2주 이내에 계약을 맺어야 한다. 기업이 재지정 제도로 원치 않는 회계법인을 피할 수는 있어도 감사보수 상승은 면하기 어렵다. 대개 재지정을 신청하면 가격 협상력이 더 약해지기 때문이다.

식품기업 오뚜기는 과거 중소형 법인인 성도이현회계법인에 감사를 맡겼으나 작년 말 삼정KPMG를 감사인으로 지정받았다. 재지정 신청 끝에 중견법인인 대주회계법인에 감사를 맡겼다. 오뚜기는 올 상반기 감사비용 3억6000만원으로 전년 동기 2억2000만원에 비해 1.5배 이상 많은 비용을 냈다. 감사시간이 2750시간에서 3680시간으로 늘었고 시간당 감사비용도 8만원에서 9만7000원으로 오른 영향이다.

감사보수를 산정하는 기준인 표준감사시간 결정 과정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기업들은 불만이다. 표준감사시간을 결정하는 위원회 위원 15명 가운데 5명이 회계법인 관계자, 5명은 투자금융사와 금융당국 몫이다. 나머지 5명만 기업 측 위원이다. 상장사 관계자는 “회계사와 투자자 등이 감사시간을 결정하면 기업은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반면 회계업계는 종전 감사보수가 비정상적으로 낮았던 것이라고 반박한다. 대형회계법인 감사본부 관계자는 “지금도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 비하면 감사보수와 감사시간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며 “국내 기업의 회계 투명성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리기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 주기적 감사인지정제

외부감사인을 6년간 자율적으로 선임한 상장사는 이후 3년간 정부로부터 감사인을 의무적으로 지정받도록 한 제도.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매년 11월 약 220개 기업에 새 감사인을 배정한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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