秋법무의 '무법행보'…민변·참여연대마저 외면

입력 2020-11-13 17:24   수정 2020-11-20 16:00


추미애 법무부 장관(사진)이 피의자의 스마트폰 비밀번호를 강제로 해제할 수 있는 법안(일명 ‘한동훈 방지법’) 제정 검토를 지시한 것에 대해 후폭풍이 거세다. 야당은 “인권유린이자 반헌법적 발상”이라며 공세를 퍼부었고, 진보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참여연대마저 13일 법안 철회와 추 장관의 사과를 요구했다. 그럼에도 추 장관은 법안 추진 의사를 굽히지 않아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인권수사 기조에 역행”
법조계에선 한동훈 방지법은 위헌 소지가 다분할뿐더러 한국 법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권리인 ‘자기부죄금지의 원칙’은 형사법의 대원칙이다. 우리 형법에선 피의자가 휴대폰을 없애는 등 자신의 형사사건과 관련해 증거인멸을 하더라도 방어권 차원에서 처벌하지 않고 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수사방해로 처벌하겠다는 논리와 같다”며 “수사기관의 권한이 무한정 커져 인권수사 기조에 역행한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추 장관이 롤모델로 언급한 영국의 ‘수사권한 규제법(RIPA)’도 인권침해 논란이 잇따르고 있는 법안이다. 테러 예방 등을 이유로 수사기관에 휴대폰 비밀번호 해제 강제 청구 권한뿐 아니라, 시민 본인의 동의 없이도 이메일과 통신 기록 등을 조회할 수 있는 권한을 광범위하게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후 언론인에 대한 무분별한 감청이 이뤄진 바 있어 영국 내에서도 ‘빅브러더’ 비판이 많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피의자가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는 식의 비협조로 수사가 난항을 겪는 경우도 많고, 특히 2022년부터 검사가 작성하는 피의자 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제한되면 디지털 증거 확보 수사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긴 할 것”이라며 “그래도 수사기관의 편의를 위해 방어권이란 핵심 가치를 무너뜨릴 순 없다”고 말했다. 법조계 일각에선 검찰이 피의자의 휴대폰을 통째로 압수해 들여다보는 등 지금도 정보인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동훈 검사장은 이날 추 장관에 대해 “보복을 위해 헌법의 근간을 무너뜨리겠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민변·참여연대도 추미애 비판
논란이 거세지자 추 장관은 이날 “법원의 공개명령 시에만 (비밀번호) 공개 의무를 부과하는 등 절차를 엄격히 하는 방안, 형사처벌만이 아니라 이행 강제금·과태료 등 다양한 제재방식을 검토하는 방안, 인터넷상 아동 음란물 범죄·사이버 테러 등 일부 범죄에 한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는 추가 입장문을 내놨다. 하지만 한 검사장의 혐의가 테러 등 중대범죄에 해당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정치권과 진보단체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민변은 이날 법안 제정 검토를 즉각 철회할 것과 추 장관이 국민에게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참여연대는 “검찰의 반인권적 수사 관행을 감시·견제해야 할 법무부가 개별사건을 거론하며 이런 입법을 검토하겠다는 것은 본분을 망각한 것”이라고 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도 “영국에서도 안보 범죄예방 공공복리에 필요한 때 등 엄격한 요건을 갖춘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암호해독명령 허가를 인정한다”며 “추 장관은 국민 앞에 책임지고 사과하라”고 했다.

이인혁 기자 twopeopl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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