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선거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한국계 여성 3명이 한꺼번에 입성하는 쾌거가 있었습니다. 한국계 여성의 연방의원은 230년 미 의회 역사상 초유의 일인데, 동시에 3명이나 배출된 겁니다. 미 하원 의원의 임기는 2년입니다.
워낙 박방의 승부를 치르면서 최종 승자 결정이 미뤄져 왔던 미국 캘리포니아주 제39선거구에서 김영옥 공화당 후보(미국명 영 김·58)가 13일(현지시간) 최종 당선을 확정했습니다.
전체의 50.6%를 득표해 민주당의 길 시스네로스 의원을 4000여 표(1.2%포인트) 차로 따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김 당선인은 “이민자로서 각고의 노력과 결단을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난 김 당선인은 13살 때였던 1975년 가족과 함께 미국령 괌으로 건너가 중·고교를 다닌 뒤 로스앤젤레스(LA) 서던캘리포니아대학(USC)에 입학하면서 캘리포니아주로 이주했습니다.
앞서 박은주 공화당 후보(미국명 미셸 박 스틸·65)는 캘리포니아주 제48선거구에서 접전 끝에 민주당 현역인 할리 루다 의원을 제쳤습니다. 득표율은 50.9%였습니다. 박 당선인은 뒤늦게 어머니와 두 명의 여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와 페퍼다인 대학을 다녔습니다. 그는 “내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축복을 받았듯 시민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공직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지요.
한국명 ‘순자’로 알려진 민주당 소속 메릴린 스트릭랜드(58·워싱턴주) 후보는 58.3%의 압도적인 표를 얻어 41.7%에 그친 상대 후보를 따돌렸습니다. 한국인 어머니 김인민 씨와 미군인 흑인 아버지 윌리 스트릭랜드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한 살 때 아버지가 버지니아주 포트리 기지로 배치되면서 미국으로 건너왔습니다. 그는 “엄마는 자신이 정규 교육을 마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학업에 매진하길 원했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어떻게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연방 의원의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우선 세 명의 한국계 여성 이력을 살펴보면, 경영학을 전공했거나 관련 석사(MBA) 학위를 딴 공통점이 있습니다.
김영옥 당선인은 USC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 퍼스트 인터스테이트은행에서 일하다 JK스포츠웨어 관리자로 근무했습니다. 직접 의류 사업도 했지요.
박은주 당선인은 페퍼다인대에서 경영학, USC에서 MBA를 각각 땄습니다. ‘순자’ 당선인은 워싱턴대에서 경영학, 클라크애틀랜타대에서 MBA를 취득한 뒤 노던생명보험 스타벅스 등에서 일했지요. 스타벅스에선 온라인 사업 매니저로 근무했습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정치권에서 차근차근 기반을 다져왔다는 겁니다. 김 당선인은 하원 외교 위원장인 에드 로이스 의원의 아시아 정책보좌관으로 21간 활동했습니다. 지역 TV인 ‘영 김과 함께 하는 LA 서울’, 라디오인 ‘라디오 서울’을 진행하며 미국 정치를 공부했지요.
박 당선인은 1993년 LA 시장에 출마한 리처드 리오단 후보 캠프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습니다. 리오단 후보가 당선된 뒤 LA시 소방국장, LA 카운티 아동 가족 위원장 등을 역임했지요.
‘순자’ 당선인은 인구가 20만여 명인 워싱턴주 타코마시 의원부터 시작했습니다. 이후 2010년부터 8년 간 타코마 시장으로 일했습니다.
한인들이 연방 의회에 많이 진출하는 것은 안보·경제 등 한국의 핵심 이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입니다. 우군(友軍)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한인 밀집지역을 지역구(뉴욕주)로 두고 있는 탐 수오지 의원만 해도 오는 18일 하원 본회의에 한미동맹과 관련한 결의안 2건을 상정할 계획입니다. 한국을 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 인권, 법치주의라는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으로 규정하는 게 결의안의 골자입니다. 미국 정부가 한국과의 외교·경제·안보 등 협력 관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것이죠.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진통을 겪어온 한미 방위비 분담금 특별협정(SMA)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박은주 당선인은 과거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 사태 때 한인들의 터전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걸 보고 한인 사회의 정치적 역량을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정치권에 발을 디딘 이유다.”라고 얘기했습니다.
한국계 연방 의원들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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