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중서부 해역 최끝단 도서인 격렬비열도를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예비 지정한다."
17일 해양수산부가 발표한 '2030 항만정책 방향 및 추진전략' 중에는 이처럼 눈에 띄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문성혁 해수부 장관이 직접 나서 발표한 이 계획은 해양수산분야 인프라 구축의 중요한 축입니다. 부산항 제2신항의 착공 시기를 2022년으로 확정하고, 향후 완전 자동화를 추진한다는 등의 중요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 부분이 눈에 띄는 이유는 격렬비열도가 '서해의 독도'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영토 및 해양주권 수호 차원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고, 그간 중국에게 매각될 뻔 하는 등 여러 차례 수모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결정으로 격렬비열도는 항구 시설이 설치되는 등 국가의 관리를 본격적으로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이름을 비롯해 격렬비열도를 둘러싼 사실들을 정리했습니다.
이 섬은 충청도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섬으로, 행정구역상 충남 태안군 근흥면에 속해 있습니다. 가까운 항구까지는 50~55km정도 떨어져 있는 무인도고요. 백령도가 이 섬보다 더 서쪽에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은 아니지만, 이 섬 역시 중국과의 영해를 구분하는 하나의 기점입니다. 바다의 국경이라는 얘깁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평소 기억하지 않는 이 섬은 전략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띱니다. 대표적인 게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입니다. 불법조업의 60%가 이곳 격렬비열도 해역에서 이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이 곳에서는 전쟁이 벌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긴급 환자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독도와 달리 이곳에는 접안시설이나 병원 등이 갖춰져있지 않습니다. 풍랑 등 사고에 대처하거나 긴급 환자를 후송할 수 없다는 얘깁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격렬비열도를 국가관리연안항으로 예비 지정해 최소한의 시설을 설치하고, 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격렬비열도 관련 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인 김정섭 성신여대 교수는 최근 YTN 라디오에 출연해 "섬 주민들을 인터뷰한 결과 중국이 2012년부터 두 차례나 조선족 동포를 앞세워서 섬을 사들이려 했다. 협상안을 들고서 자금을 대는 중국 측 누군가의 승인을 받으러 중국 본토를 왕래했다고 한다. 섬의 토지는 물론 인근 양식장 허가 관련 서류까지 떼어온 것으로 봐서 어장 확보까지 노린 시도로 파악된다"고 했습니다.
김 교수는 "우리 바다 국경을 침탈하고 황금어장도 빼앗아가려 한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당시 섬 소유주는 20억원을 불렀다고 합니다. 중국 측에서 비싸다며 16억원을 역제의했는데, 당시 중국이 이를 받아들였다면 이미 이곳은 한국 땅이 아닐 수도 있었다는 뜻입니다.
국가관리연안항에는 영해 관리를 위해 해경 경비함정이 정박할 수 있는 부두를 설치해야 합니다. 충남도는 서해 영해 수호와 어족자원 보호 등을 위해 2018년 해수부에 국가관리연안항 지정·개발을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건설 비용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격렬비열도에 항구를 짓는 비용은 3000억원 안팎으로 알려졌는데, 무인도 특성상 도저히 이 사업의 경제성을 확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처음 난색을 표하던 기재부도 해수부와 정치권의 설득에 마음을 돌려 항구를 지어주기로 했습니다.
2018년 작고한 황현산 교수는 몇 년 전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서쪽 끝섬 격렬비열도의 이름이 들어간 가장 아름다운 말은 박정대 시집 제목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시집에 그 제목의 시는 없지만, 격렬하고 비열했던 청춘의 회한은 많고, <음악들>이라는 시에 바로 그 말이 들어 있다." 격렬비열도가 더 많은 국민들의 관심을 받기를 바라며 황 교수가 이야기한 박정대 시인의 시를 첨부합니다.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산뚱 반도가 보이는 그곳에서 너와 나는 한 잎의 불멸, 두 잎의 불면, 세 잎의 사랑과 네 잎의 입맞춤으로 살았지, 사랑을 잃어버린 자들의 스산한 벌판에선 밤새 겨울밤이 말달리는 소리, 위구르, 위구르 들려오는데 아무도 침범하지 못한 내 작은 나라의 봉창을 열면 그때까지도 처마 끝 고드름에 매달려 있는 몇 방울의 음악들, 아직 아침은 멀고 대낮과 저녁은 더욱더 먼데 누군가 파뿌리 같은 눈발을 사락사락 썰며 조용히 쌀을 씻어 안치는 새벽,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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