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趙芝薰·본명 동탁·1920~1968) 시인은 시 ‘행복론’에서 행복이 산 너머에 있지 않고 우리 마음에 있다고 노래했다. 서양 희곡 ‘파랑새’에 나오는 ‘집’보다 더 가까운 ‘마음속’, 그것도 ‘스스로 만드는 것’이어서 ‘혼자서 들여다보며/가만히 웃음 짓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와 광복,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숱한 시련을 겪었다. 제헌의원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6·25 때 납북됐다.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피란지에서 세상을 떴다. 할아버지는 전란 중 극심한 이념 대립으로 문중이 갈등을 빚자 자결하고 말았다. 동생마저 학도병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관통한 그가 ‘울면서 찾아갔던’ 삶의 길도 어지러웠다. 시의 힘이 아니었으면 지탱하기 힘들었다. 그는 키 180㎝의 거구였지만 어릴 때 앓은 백일해 후유증으로 평생 고생했다. 그런데도 마음의 중심에 ‘긍정의 뿌리’를 깊게 내리고 살았다. 마지막에 쓴 시 ‘병(病)에게’에서는 오랜 지병을 ‘공경하는 친구’라고 불렀다.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잊어버리고 있었던 그 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이 시에서 ‘잘 가게 이 친구/생각 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차를 끓여 마시며 우린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라고 했던 그는 48세에 하늘로 떠났지만, 그가 남긴 ‘긍정의 뿌리’에서는 튼실한 ‘과일나무’가 자라고 ‘가지가 찢어지게/ 열매’까지 익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가 교수로 재직했던 고려대 등에서 추모행사가 이어지고 있다. ‘꽃이 지기로서니/바람을 탓하랴’(‘낙화’)며 삶의 허욕을 경계했던 그의 시혼은 ‘지초(풀) 지(芝)’와 ‘향초 훈(薰)’의 속뜻처럼 여전히 긴 울림을 준다. 당대의 명문 《지조론(志操論)》으로 정치인들을 준엄하게 꾸짖던 ‘대쪽 기개’도 그 속에서 여문 또 하나의 열매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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