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전선 1조 넘보는 수주…'똬리 튼' 해저케이블로 동해가 꽉 찼다

입력 2020-11-17 17:11   수정 2020-11-18 03:28

“주문량이 어마어마해요. 케이블 보관용 턴테이블이 수십 개는 더 있어야 합니다.”


17일 아시아 최대 해저 케이블 생산기지인 강원 동해시 LS전선 사업장. 현장에선 전선 보관용 초대형 턴테이블 공사가 한창이었다. 전선 주문량이 폭주하면서 케이블 보관용 시설마저 부족해졌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 4월엔 2공장까지 준공했지만 납기를 맞추기가 빠듯할 정도여서 공장을 풀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끊김 없는’ 케이블 생산 기술 확보
이날 동해사업장 직원들은 대만에 실어보낼 제품을 만들어 포장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대만 정부에서 추진하는 5기가와트(GW) 규모 해상풍력 발전단지에 들어갈 초고압 해저 케이블로 지난 6월부터 출하가 시작됐다. 해저 케이블은 바닷속에 설치해 전력이나 데이터 등을 전달하는 전선이다. 송전용 해저 케이블을 제조할 수 있는 업체는 LS전선을 포함해 세계적으로 5~6곳뿐이다.

해저 케이블 업체들의 기술력을 가늠하는 기준은 ‘전선의 길이’다. 필요한 만큼 전선을 길게 만드는 게 경쟁력이다. 이어 붙인 곳이 없어야 데이터와 전력 손실이 최소화된다. 문제는 불량률이다. 짧은 전선을 이어가며 작업을 하면 불량이 발생한 부분만 갈아 끼우면 되지만 처음부터 길게 만들면 애써 만든 전선을 전부 폐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요 전선업체들이 수㎞ 단위로 전선을 생산하고 이를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이유다. LS전선은 지금까지 2㎞ 단위로 전선을 제조했지만 최근엔 전선 생산 단위를 열 배 이상인 수십㎞로 늘렸다. 좀처럼 불량이 안날 만큼 기술력이 올라왔다고 판단한 것이다.

제조 라인에서 빠져나온 검은 케이블의 굵기는 사람 몸통과 비슷하다. 김형준 LS전선 과장은 “거친 바닷속에서 케이블이 해류에 떠밀려 부식되거나 끊기지 않으려면 굵기가 일정 수준 이상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완성된 케이블은 땅에 파놓은 통로를 통해 공장에서 동해항으로 보내진다. 뱀이 기어가는 것처럼 1분에 5m씩 항구로 이동한다. 동해사업장의 임무는 선적까지다. 고객사들과 계약한 선사가 동해항에서 케이블을 싣고 공사 현장으로 떠난다.
수주 대박에 생산량 2.5배 증가
LS전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세계 각국에서 경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대규모 설비 투자에 나서면서 해저 케이블 주문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발전 시설과 관련한 주문이 부쩍 늘면서 올해 세계 4위 업체로 올라설 전망이다. 지난달 말 기준 이 회사의 수주 잔액은 1조원에 육박한다. 매달 수주 잔액 기록을 새로 쓰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지난해 대만에서 5000억원 규모 해저 케이블을 수주하고, 올초 바레인에서 1000억원 규모 수주에 성공하는 등 잇달아 수주 ‘대박’을 터트린 영향이다. 글로벌 해상풍력 기업 A사와 장기 공급계약도 앞둔 상태다.

수주가 늘면서 실적도 개선되고 있다. LS전선의 1~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4.1%와 1% 증가했다. 지난해 수주한 싱가포르 송전 케이블과 대만 해저 케이블 납품이 시작되면서 코로나19로 잠시 위축됐던 실적이 제자리를 찾았다. 코로나19의 타격이 가장 컸던 동남아시아 시장도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베트남과 미얀마 시장에 진출한 자회사 LS전선아시아의 3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2분기보다 각각 8%, 827% 뛰었다.

명노현 LS전선 대표는 “노후 케이블 교체와 해상 풍력단지 개발에 따라 미국의 해저 케이블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말했다.

동해=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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