휑한 마음을 추스르고 싶은 그 순간 정작 나를 위로한 건 유행가 한 소절이었다. 반백의 성긴 머리칼이 매력인 가수 최백호 씨의 노래였다.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잔에다 슬픈 색소폰 소리 들어보렴’ 하고 울려 퍼지는 색소폰 소리에 나는 무릎을 탁 쳤다. 그리고는 바로 궁둥이를 들어 색소폰을 배울 곳을 찾아다녔다.
아뿔싸. 색소폰은 배운다고 되는 악기가 아니었다. 스스로 소리를 낼 수 있는 게 관건이었다. 일요일에 집에서 연습한다고 동요 한 곡 불었더니 이웃 주민으로부터 시끄럽다는 민원이 들어왔다. 색소폰을 메고 집 근처 공원으로 가서 한 소절 불었더니 공원 관리인이 와서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다. 다음날 야심한 밤에 마포대교 아래로 갔다. 여기는 괜찮겠지 하고 색소폰을 꺼내어 목에 걸고 한 음을 불었더니 지나던 행인이 “유람선 끊겼는데 어디서 뱃고동 소리가 나지” 하면서 지나간다.
내가 다니는 교회의 음악아카데미에서 색소폰을 가르쳐준다길래 등록했더니 한 강좌 끝나고 발표회를 하라고 한다. 교인인 남성 두 분과 함께 졸업 연주회를 하게 됐다. 연주하는 동안 내 색소폰에서만 삑삑 소리가 났다. 관객들은 ‘삐익’ 하는 소리를 내는 사람이 누군지 사뭇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내가 아닌 것처럼 애써 표정관리를 했지만, 연주가 끝난 다음 두 분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는 바람에 삑 소리의 주인공이 나란 것을 모두에게 알리고 말았다.
그러길 6년. 우연한 기회에 각종 다양한 색소폰만으로 구성된 앙상블에 가입하게 됐다. 1년에 한 번 자선 음악회 무대에도 선다. 색소폰 시작한 지 6년이라고 하면 친구들은 내가 수준급인 줄 안다. 그렇지만 그건 절대 아니다. 연주곡 중에서 내가 불 수 있는 부분만 분다. 어려운 부분은 절간에 온 색시처럼 조용히 입만 대고 있는 게 예의다.
나는 노래는 즐기되 박자를 모르는 박치였다. 한 박자 두 박자를 셀 수 있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운 세계였다. 심금을 울리는 음악이 울려 퍼지면 ‘연습하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다.
취미에 대한 내 지론은 즐거움이다. 못해도 즐겁다. 잘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못 한다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도 없다. 취미는 즐거우면 된다. 오늘도 나는 즐겁기 위해서 색소폰을 메고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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