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의 전 부인이 전면에 나섰다. 사건 발생 후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유족이 원하는 수준의 사건 진상규명이 요원해서다.
이씨 전 부인은 18일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정부는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일갈했다.
이씨의 실종과 사망 과정에서 우리 군의 부실대응이 곳곳에서 드러났지만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은 없었다. 정부도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물밑 접촉에만 몰두하면서 이씨 사망사건은 외면당하고 있다는 게 유족의 주장이다.
사건 조사를 맡았던 해경은 이씨의 도박 전력, 채무 상황, 이혼 경력 등을 공개하며 월북 가능성을 언급했다. 반면 정황 증거가 아닌 직접 증거를 제시하라는 유족 요청은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쏟아지는 악플(악성 댓글)에 죽음까지도 생각했다는 이씨 전 부인은 "정부가 확실한 증거 없이 정황을 토대로 (이씨의) 월북을 기정사실화, 남겨진 가족들의 삶까지 무너지게 만들었다"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않은 정부에 책임을 묻고 싶다"고 강조했다.
"세상에 누가 월북을 아무 준비 없이 순간적 판단으로 하나. (사고 사흘 전인) 9월18일에 남편이 딸과 화상 통화하며 입항하면 집에 온다고 했다. 실종 2시간 전에도 아들과 진로 얘기를 했다. 저와도 아들 공부 얘기 등 평소와 다르지 않은 일상적 대화를 나눴다. 무엇보다 아이들에 대한 애착이 강하고 생활력도 강한 사람이라 전혀 (월북을) 상상할 수도 없다. 남편은 원양어선 선장을 했던 사람이다. 도망가고 싶고 돈이 급했으면 원양어선을 다시 타면 됐다."
▷이씨는 어떤 방식으로 회생 및 재기할 계획이었나.
"개인회생 진행 중이었다. 매월 260만원씩 3년간 변제하면 충분히 갚을 수 있는 채무였다. 최근까지도 '3년만 고생하면 괜찮아진다, 그때까지 조금만 고생하자'는 말을 해왔다. 빨리 재기하려고 출동이 없는 날에 주말마다 쉬지 않고 당직을 섰고 추석 연휴에도 그랬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유가족 중에는 이 일이 언론과 정치권에서 정쟁화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고 발언했는데.
"제가 아이들의 법적 보호자다. 아주버님(이씨 친형 이래진씨)께서는 무엇이든 저와 상의 후에 일을 진행하고 계신다."
▷이씨는 가족들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컸나?
"아이들과 자주 화상통화 했고 SNS나 카톡에 항상 아이들 가족사진을 올렸다. '딸바보' 말을 들을 정도로 통화하면 항상 사랑한다는 말과 뽀뽀로 마무리 했다. 늦둥이 딸은 저보다 아빠를 더 좋아했다."
▷이씨가 빚을 청산하면 재결합할 예정이었다고?
"채권자 쪽에서 집으로 찾아올까봐 걱정했다. 아이들한테 그런 모습은 보이고 싶지 않아 이혼했지만 남편과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아이들도 아빠를 너무 좋아한다. 복잡한 일이 정리되면 재결합하려 했다."
▷이씨가 평소 북한이나 월북에 대해 언급한 적은 없었는지.
"전혀 없다. 해경이 평소 남편이 북한을 동경했냐고 묻더라. 황당했다. 남편은 공무원으로 늘 사명감을 갖고 살아왔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끔찍하게 아끼며 살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겠나?"
▷어떤 사람이었나.
"어민들을 위해 나라 영해를 지킨다는 자부심이 컸고 한 달에 두 번밖에 집에 못 오는데도 광복절 행사에 참여할 정도였다. 국경일에 국기게양 꼭 하라고 태극기를 직접 사오기도 했다. 배에 힘든 일도 먼저 나서서 하는 성격이라 다치지 않을까 제가 늘 걱정했다."
▷월북을 오랜 기간 준비한 게 아니라 심리적 불안함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순간적 판단으로 했다는 분석도 있다고 해경은 주장한다.
"월북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나오지 않으니 오랜 기간 준비한 게 아니라고 하는 거다. 추측만으로 그렇게 말하는 건, 증거에 입각한 수사를 해야 하는 경찰의 자세가 아니라고 본다. 집을 처분해서라도 급한 빚을 해결하거나, 친정 부모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본인이 스스로 빚을 갚아나가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해경 말처럼 채무 때문에 월북을 감행할 정도였다면 저한테 도움을 청했을 테고, 그러면 충분히 도움받을 수 있다는 것도 남편은 알고 있었다."
▷월북 추정 발표 후 댓글 등을 통해 유족이 상처를 받았겠다.
"악플로 죽음까지 생각할 정도의 고통을 느꼈다. 한동안 아들이 학교 가는 것도 꺼려했다. 안 좋은 기사가 나오는 날이면 조퇴하고 집에 오곤 했다. 다행히 교감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의 관심과 배려로 극복해나가고 있다."
▷아들이 보낸 편지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답장이 다소 무성의했다는 논란도 있었다.
"궁금했던 부분에 대한 구체적 답변이 없어서 아쉬운 점은 있었다. 하지만 책임을 묻고 진실을 밝히는 데 대통령님이 직접 나서겠다고 약속해주신 데에 감사드린다."
▷일부 정치인들은 '월북자는 사살당해도 문제없다'는 식의 발언도 했는데.
"엄연히 국제법을 위반했는데 정당한 행위라고 두둔한다면 법은 왜 존재하나? 그렇다면 우리나라로 월남하는 북한사람은 왜 사살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터전까지 만들어주는 것인가?"
▷늦둥이 딸은 아직 아빠의 죽음을 모르고 있다고 들었다.
"아직도 아빠가 해외 출장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빠 목소리 듣고 싶다고 전화해달라고 할 때마다 어떻게 해줄 수 없어 슬프다."
▷이씨 사망과 관련해 국제사회는 적극적인 데 반해 정부 대응은 소극적이란 지적이 있다.
"대한민국 공무원으로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해왔던 남편이었다. 자국민은 이렇게 헌 신짝 버리듯 하고 살인을 저지른 북한의 사과문 한 통에는 감동받아 유가족 고통은 헤아리지 않는 정부는 국제사회에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국방부는 이씨 월북 근거를 모두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국방부는 아주버님이 비밀을 지키겠다는 서약을 하겠다는데도 군사기밀 운운하며 월북 근거를 공개하지 못한다고 한다. 사살 당한 사람이 내 남편인지도 확인 못했고 직접 월북 의사를 표시한 음성도 없다는데 어느 누가 믿을 수 있겠나? 국민의 목숨을 살리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정부의 실책을 덮기 위해 월북 프레임을 씌우는 것으로밖에 생각 안 된다."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정부는 정확한 증거 없이 정황만을 가지고 남겨진 가족들의 삶까지 무너지게 만들었다. 국가의 공무원이, 한 집안의 가장이 북한에 의해 사살 당했지만 누구 한 명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책임을 피하려 공무원이었던 사람을 월북자로 둔갑시키기에 급급했다. 국민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던 게 이 사건의 본질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않은 정부에 책임을 묻고 싶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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