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사전이 알려주는 것들 (2)

입력 2020-11-23 09:01  


2010년 영국의 옥스퍼드대 출판부는 비장한 소식 하나를 전했다. “인쇄판 사전 시장이 연간 수십 %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제3판은 인쇄판 대신 온라인판으로만 낼 계획입니다.” 120여 년 역사를 자랑하던 옥스퍼드 종이사전에 종말을 고한 셈이었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종이에서 디지털로 진화하는 국어사전
한국은 이보다 좀 더 이르게 종이사전의 조종을 울렸다. “국립국어원에서 1999년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의 개정판을 인터넷사전(웹사전)으로만 편찬할 예정입니다.” 국어원은 2006년 한글날을 기해 앞으로 나올 표준국어대사전 개정판을 온라인으로만 발간하겠다고 밝혔다. 그 대신 웹사전의 기능을 한층 강화했다. 컴퓨터와 휴대폰이 일상의 용품이 된 디지털 시대라 ‘내 손안의 사전’이 가능해졌다. 언제 어디서든 더 편리하게 사전을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국어원에서는 표준국어대사전 인터넷판 외에도 온라인 사전인 <우리말샘>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말샘은 국민 누구나 참여해 새로운 말을 올리고 설명을 달 수 있는, 쌍방향 개방형 사전이다. 이와 관련해 국어사전에 관한 일반적인 오해 하나. 우리말샘에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수많은 말이 올라 있다. 이걸 보고 “사전에 나오는데, 써도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이들이 꽤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들은 규범어가 아니다. 아직 정식 단어가 아니라는 뜻이다. 경험상 그중 상당 부분은 시일이 흐르면서 사라질 말들이다. 단어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 간 광범위성을 비롯해 계층 간/세대 간 통용성, 지속성, 품위성 등 여러 조건들을 충족해야 한다. 특히 인터넷상의 ‘오픈사전’류에서 볼 수 있는 말은 공인된 ‘단어’가 아니므로 단순 참고용으로만 봐야 한다.
삿갓표(^)는 단어 형성 구조 보여주는 표시
국어사전이 웹사전으로 진화하면서 우리 곁에 다가왔지만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다. 웹사전을 100% 활용하기 위해서는 사전부호를 먼저 알아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지난 호에서 살핀 붙임표(-) 외에도 삿갓표(^)가 달린 표제어가 꽤 많다. ‘유럽^연합’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고유명사류와 전문용어들에서 보인다. 이들은 무슨 표시일까? 혹시 죄다 띄어 써야 한다는 뜻일까? 이 역시 사전에 대한 여러 오해 중 하나다.

‘^’는 한글맞춤법의 부록 문장부호 규정에도 없는 표시이다. 물론 이름도 정해진 게 없고 대개 삿갓표라고 불린다. 이 표시는 띄어쓰기를 보여주기 위한 게 아니라 합성어의 어형성 구조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가령 ‘대륙간탄도유도탄’이란 말은 어떻게 구성돼 있을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대륙^간^탄도^유도탄’으로 나온다. 즉 이 말이 ‘대륙+간+탄도+유도탄’이 결합해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물론 이를 띄어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우리말은 단어별로 띄어 쓴다는 규정(맞춤법 제2항: 문장의 각 단어는 띄어 씀을 원칙으로 한다)에 따라 고유명사류와 전문용어 역시 띄어 쓰는 게 원칙이다. 하지만 통상 하나의 개념으로 인식돼 붙여 쓰게 된다(맞춤법 제49~50항). 결국 띄어 쓰는 게 원칙, 붙여 쓰는 것도 허용이란 뜻이다.

이런 정신은 고유명사로 볼 수 있는 ‘국군의날’ ‘붉은악마’ 같은 말을 붙여야 할지, 띄어야 할지 곤혹스러울 때도 적용된다. 우리 맞춤법에서는 이 경우 둘 다 가능한 것(‘국군의 날/붉은 악마’ 원칙, ‘국군의날/붉은악마’ 허용)으로 해 놓았다. 원칙을 살리면서 언중의 편의성을 함께 고려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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