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 아닌가요?" 피살 공무원 前 부인 오열 [전문]

입력 2020-11-20 14:08   수정 2020-11-20 15:43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공무원의 아들이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김홍희 해양경찰청장 등을 상대로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서를 접수한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 이모씨 유족 측은 2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에 위치한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진정서를 접수한 이유를 밝혔다.

특히 기자회견에는 미성년자인 이씨의 아들을 대신해 어머니가 참석했다. 숨진 이씨의 전 부인이다. 전 부인 A씨는 일부 언론 인터뷰에 응한 적은 있지만 직접 기자회견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씨는 "사건 발생 후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와 아이들은 만신창이가 되어 벌거벗겨진 기분으로 매일을 살얼음판 걷는 기분으로 살아내고 있다"며 "남편을 찾지도 못했고 장례식도 못하여 편하게 보내주지도 못한 상황에서 우리 세 사람에게 남은 건 적나라하게 공개된 사생활로 그 어디에도 서지 못하는 현실뿐"이라고 했다.

이어 "제가 생각했던 대한민국은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사람이 먼저인 곳이었다. 하지만 큰 사건의 중심에 서고 보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저와 아이들이 설 곳은 없었다"며 "해경의 지나친 사생활 발표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한 번쯤 생각을 해보셨을까요? 위령제 다음 날 해경에서 제 자식들의 아버지를 근거없이 정신적 공황상태라고 발표하면서 아들은 심한 스트레스로 조퇴하고 집에 오게 되었고 아빠 따라 가고 싶다며 한동안 울기만 하는 아들을 끌어안고 같이 울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A씨는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이제 겨우 여덟살 딸이 10년, 20년 뒤 아버지가 도박했고 정신공황이었다는 뉴스를 보게 될까봐 너무 두렵다"며 "당신들도 한 가정의 아버지일텐데 다른 사람의 가슴에 생채기 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이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빠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우는 딸에게 엄마가 우는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어야 했고 예민한 시기의 아들이 나쁜 생각 갖지 않게 하려고 저는 광대가 되어야 했다"며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을 우리 셋은 살았던 것이 아니라 버텨냈던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내 아들과 딸이 당당하게 꿈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엄마로서 모든 것을 할 것"이라고 했다.

A씨는 입장문을 읽어내려가다 오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권위 진정 대상은 신 의원 및 김 청장, 윤성현 수사정보국장, 김태균 형사과장 등 해양경찰청 관계자들이다.

신동근 의원은 지난 9월 SNS에 "피격 공무원이 월북했느냐, 안 했느냐로 논란이 있었는데 오늘 해경에서 (공무원이) 귀순 의도를 갖고 월북한 것으로 공식 발표했다"며 "월북은 반국가 중대범죄이기 때문에 월경 전까지는 적극적으로 막고, 그래도 계속 감행할 경우 사살하기도 한다"고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유족 측은 "신 의원의 해당 발언은 아버지를 잃어 슬픔에 빠진 고인 자녀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정신적 가해 행위"라며 "인권침해를 이유로 진정을 접수한다"고 밝혔다.

또 해양경찰청에 대해서는 "고인을 한 달 넘게 찾지 못한 해경은 지난달 22일 제2차 중간 수사보고 형식으로 기자회견을 하면서 고인에 대해 '정신공황'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은 "해경은 수사 중이라는 점을 이유로 유가족이 원한 '월북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정보'는 비공개하면서, 월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도박에 대해 집중적으로 발표하면서 고인과 자녀들의 인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유족 측에 따르면 해경은 실종 당시 기상 상황 등을 고려해 보면 월북을 할 수 없었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을 것으로 보여지는 무궁화10호 선원들의 진술 조서와, 월북이 아닌 것으로 추정되는 초동수사자료에 대해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특히 유족 측은 김태균 해경 형사과장에 대해서는 "친형 이래진씨가 수사 결과에 관해 항의하자 '무슨 수사를 잘못했냐'는 취지로 언성을 높이며 짜증을 냈다"며 "이로 인해 유족들이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한편 해경은 지난달 중간 수사 결과를 통해 이씨가 도박에 빠져 지내다 부채 등을 이유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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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저는 북한해역에서 사살당한 공무원의 열여덟살 아들과 여덟살 딸의 엄마입니다.
오늘 저는 두 아이의 엄마로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이 험난한 세월을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이 자리에 서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인생은 둘째치더라도 제가 낳은 제 아이들이 너무 가여워 매일을 가슴으로 울고 있습니다.

사건 발생 후 두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저와 아이들은 만신창이가 되어 벌거벗겨진 기분으로 매일을 살얼음판 걷는 기분으로 살아내고 있습니다.
남편을 찾지도 못했고 장례식도 못하여 편하게 보내주지도 못한 상황에서 우리 세 사람에게 남은 건 적나라하게 공개된 사생활로 그 어디에도 서지 못하는 현실뿐입니다.

제가 생각했던 대한민국은 대통령님의 말씀처럼 사람이 먼저인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큰 사건의 중심에 서고 보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저와 아이들이 설 곳은 없었습니다. 민감한 개인신상에 대한 수사 정보를 대외적으로 발표하여 명예살인을 자행하였고 아무 잘못도 없는 아이들이 도박하는 정신공황상태의 아빠를 둔 자녀라고 낙인되어 제 자식들의 미래를 짓밟아 놓았습니다.

해경의 지나친 사생활 발표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한 번쯤 생각을 해보셨을까요? 위령제 다음 날 해경에서 제 자식들의 아버지를 근거없이 정신적 공황상태라고 발표하면서 아들은 심한 스트레스로 조퇴하고 집에 오게 되었고 아빠 따라 가고 싶다며 한동안 울기만 하는 아들을 끌어안고 같이 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서 아빠가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이제 겨우 여덟살 딸이 10년, 20년 뒤 아버지가 도박했고 정신공황이었다는 뉴스를 보게 될까봐 너무 두렵습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는 기본권인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는다는 헌법 조항이 있음에도 금융거래를 조회하여 민감한 부분을 동의없이 언론에 발표함으로써 도박을 한 사실이 월북의 직접적인 이유인 것처럼 발표하여 아이들을 학교조차 갈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해경청장은 “수사를 하다보면 궂은일을 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의 인권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책임을 가진 경찰이 내 아들의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오게 만들었습니다.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까 공포까지 밀려옵니다. 진정 이 나라는 저를 자식 앞세우는 엄마로 만드려는 겁니까? 아직 피어보지도 못한 가여운 내 아이들한테 이러지 마십시오.

손가락질받고 지탄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저에게 해주십시오. 제 아이들은 안됩니다. 제 인생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지만 아이들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당신들도 한 가정의 아버지일텐데 다른 사람의 가슴에 생채기 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들이 살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까? 그 상대가 아직 꿈조차 펼쳐보지 못한 아이라고 해도 그렇습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라고 국민을 대신하여 그 자리에 있는 것이지 약자의 삶을 짓밟으라고 준 자리가 아닙니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당신들은 모릅니다. 아빠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우는 딸에게 엄마가 우는 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어야 했고 예민한 시기의 아들이 나쁜 생각 갖지 않게 하려고 저는 광대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두 달이라는 시간을 우리 셋은 살았던 것이 아니라 버텨냈던 것입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땅에서 내 아들과 딸이 당당하게 꿈을 펼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엄마로서 모든 것을 할 것입니다. 엄마라면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니깐요.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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