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재무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도입된 중앙은행(Fed)의 긴급대출 프로그램 일부를 올해 말 종료하고 자금을 회수하겠다고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면서 중소기업 등이 타격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이런 조치가 나오자 미 정치권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조 바이든 당선인을 견제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Fed는 재무부 조치에 즉각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손발을 맞춰온 재무부와 Fed가 정면충돌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19일(현지시간) 제롬 파월 Fed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목적을 명확히 달성했다”며 일부 긴급대출 프로그램을 올 12월 31일 종료하겠다고 밝혔다. 또 긴급대출 프로그램에 배정된 자금 중 불용액을 모두 반납하라고 요구했다. 므누신 장관이 올해 말을 끝으로 연장 불가 방침을 통보한 긴급대출 프로그램은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메인 스트리트 대출’. 지방채 매입을 위한 ‘지방정부 지원기구’, 회사채를 매입하는 ‘유통시장 기업 신용기구’와 ‘프라이머리 마켓 기업 신용기구’ 등이다.
미 의회는 지난 3월 2조2000억달러의 초대형 경기부양책을 통과시키면서 Fed에 긴급대출 용도로 4540억달러를 배정했다. 이 중 지난달까지 1950억달러가 사용됐고 나머지는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은 Fed가 운용하지만 재무부가 돈을 대고 연장 여부도 재무부가 결정한다. 이 때문에 재무부 요구대로라면 Fed는 최악의 경우 불용액 대부분을 반납해야 하며, 기존 대출자금도 만기가 돌아오는 대로 추가 연장 없이 전부 회수해야 한다. Fed는 이날 성명에서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기간 설치된 모든 긴급 대출기구가 여전히 어렵고 취약한 우리 경제에 대한 후방 지원 역할을 계속해나가길 원한다”며 재무부 조치에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긴급대출 프로그램이 끊기면 경제가 충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파월 의장도 지난 17일 “적절한 시기가 오면 그 도구들(긴급대출 프로그램)을 치우겠지만 지금은 그 시기가 아니고 곧 임박한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므누신 장관이 갑작스럽게 긴급대출을 끊겠다고 나선 데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상원 금융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론 와이든 의원은 “바이든 당선인에게 정치적 고통을 가하기 위해 재를 뿌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므누신의 요구가 관철되면 바이든 당선인이 Fed를 통해 코로나19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제한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이 지명할 새 재무장관이 취임하면 해당 프로그램들을 재승인할 수 있지만 그 시점은 일러야 내년 1월 말이 될 전망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일부 공화당 의원이 긴급대출 프로그램에 배정된 자금이 민주당에 의해 민주당 주·지방정부를 돕는 데 전용될 수 있다고 의심한다고 전했다. 결국 바이든 당선인과 트럼프 대통령, 민주당과 공화당의 ‘힘겨루기’ 때문에 애꿎은 중소기업 등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월가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미 CNBC는 이날 밤 다우지수 선물이 한때 200포인트 이상 하락한 걸 거론하며 “시장 참가자들이 (므누신의) 행보에 움찔했다”고 전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앞서 이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에 대해 “엄청난 무책임”이라고 비판했다.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선 “경제 봉쇄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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