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양승언(55)의 장편소설 《도시 벌레》(도서출판 아침)에 나오는 주인공 아버지의 말이다. 농사꾼 아버지는 평생 흙벌레처럼 땅만 파고 살았다. 소처럼 일만 한다고 해서 ‘꼬리 없는 소’로 불렸다.
그 아들인 ‘나’ 역시 생활의 등짐을 잔뜩 진 채 고군분투하고 있다. 어렵게 식당을 차려 20년간 하루 15시간씩 일하며 아등바등했지만 끝내 문을 닫고 말았다. 식당에서 불판을 닦고, 정육을 손질하며, 설거지까지 하느라 허리가 끊어질 것 같던 지난날의 고생보다 앞길이 보이지 않는 게 더 힘들었다.
어느 날 어깨뼈가 빠져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갈 수 없게 됐을 때는 속으로 아버지를 부르며 눈물을 삼켰다. 급기야 모든 걸 포기하고 도피자의 심정으로 필리핀 보라카이 원주민 마을을 찾아간 그는 이방인의 눈으로 자신을 되돌아봤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치열한 도시의 벌레로 헐떡여야만 했는가?’
이 질문은 작가가 청년 시절 ‘나는 누구인가’ ‘왜 사는가’로 고민할 때부터 품었던 것이다. 그래서 20대 초반에 출가했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一日不食: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의 수행자로 9년간 만행(萬行)하면서 사는 일의 근본인 ‘생’과 ‘밥’의 의미를 탐구했다. 그래도 화두는 풀리지 않았다. 결국 환속한 그는 밥을 지어 세상과 나누는 식당을 차렸다. 그러나 밥을 위한 일벌레로 사는 동안 끊임없는 갈증에 시달렸다.
그 갈급증을 해소하려 밤마다 글을 썼다. 소설가 윤후명의 ‘소설학당’에서 공부한 끝에 《세기문학》 신인상에 뽑혔고, 농민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워낭소리’(2006)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단편소설로는 마음속의 정념을 다 풀어놓을 수 없었다. 매년 한 권 분량의 장편소설을 썼다. 다 쓴 원고를 불태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내면의 불길을 주체할 수 없을 땐 권투 도장을 찾아 샌드백을 두들겼다. 전국시니어복싱대회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지만, 역시 글쓰기가 몸에 맞았다. 《도시 벌레》는 그가 세상에 내놓은 첫 장편이다.
이 작품을 읽다 보면 100여 년 전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떠오른다. 외판 사원인 주인공이 어느 날 아침 한 마리 벌레로 변해버린 모습을 통해 개인의 무기력감과 실존적 소외를 일깨우는 것이 도시 속의 일벌레와 닮았다. 생활비를 버는 동안만 존재를 인정받고, 그 빈자리는 금방 대체되는 인간 본질의 기능적 한계를 보여주는 점도 서로 통한다.
카프카가 독일계로부터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한 20세기 사회, 중도 소도 아닌 비승비속(非僧非俗)의 경계에서 양쪽으로부터 소외당하는 21세기 작가의 현실 또한 닮았다. 카프카가 작품을 세상에 내보이길 꺼리고, 죽기 전 모든 글을 불태워달라고 했던 것처럼 몇 번이고 원고를 불태우며 완성도를 높이려 애쓰는 자세까지 비슷하다.
식당 폐업 직후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났다. 땅바닥이 갑자기 꺼지는 생의 허방다리에서 그는 이번 작품을 수없이 고쳐 쓰며 다시 일어났다. 소설 속 주인공마냥 필리핀 오지로 떠났다가 한 마리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는 도시 벌레의 꿈을 안고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소설 뒤페이지의 ‘작가 방’ 글귀에 비친 그의 내면이 아릿하다. ‘나는 벌레처럼 이 방안에서 산다./내가 겪고 생각하는 이야기를,/벌레가 나비가 될 것을 그리며/신화 혹은 전설이 될 것을 믿으며/ 오직 열심히, 부지런히 쓸 것이다.’
소설 출간 이후에도 오후 불식(不食)으로 스스로를 다잡는 그에게 밥은 여전히 생명의 근본이고, ‘숟가락처럼 봉사하는 겸손한 식당’의 주인이다. 그런 그의 출판기념회에 문인과 기업가까지 모여 합창을 했고, 독자들은 그에게 한 달 만에 3쇄 돌입이라는 선물을 안겼다.
충북 진천에서 온 양근식 금수실업 회장은 “벌써 15년째 이어져온 인연인데, 문학의 가치가 현실의 밥만큼이나 귀중하다는 것을 오늘 새삼 깨닫는다”고 했다. 식료품 회사를 운영하며 많은 선행을 베푼 양 회장은 이날 행사에 앞서 사비 500만원을 남몰래 내놨다.
신촌에서 오피스텔을 건설 중인 김영석 에레츠파트너스 회장은 ‘책판여화 독자감동(冊販如火 讀者感動: 책이 불같이 팔리고 읽는 사람들은 감동하라)’이라는 축사를 건넸다. 작가가 ‘분양여화 안택희락(分讓如火 安宅喜樂: 불같이 분양이 잘되고 그 집에 사는 이들은 편안하고 즐거우라)’이라는 기원문을 써준 데 대한 화답이었다.
소설가 한정광 씨는 자신의 창작 과정을 들려주며 건필을 기원했고, 시인 조명 씨는 자작시 ‘세족’으로 그동안의 노고를 씻어줬다. 문단 동료 조미해·이희단(소설가), 명재신(시인), 서예가 권영진, 정한성·이종민 연세대 교수, 원용진 이화여대 교수, 문학다방 ‘봄봄’의 김보경 대표와 낭독회원들도 ‘고향의 봄’을 함께 부르며 작가를 응원했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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