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 앞으로 지스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알려주는 행사였습니다. 올해 노하우를 계기로 내년에는 더 풍성한 행사로 개최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를 방지하기 위해 사상 첫 '온택트(Ontact·온라인+대면)' 행사로 열린 국내 최대 게임쇼 '지스타 2020'에 대한 국내 한 게임업계 관계자의 얘기입니다. 그는 "대회 조직위원회부터 업체들까지 모두 처음 겪는 상황이라 다소 우왕좌왕했지만 온라인으로 게임팬들을 만나는 것은 앞으로 더 익숙해져야 할 업계의 숙제"라고 했습니다.
우선 온라인 개최로 관심도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흥행 성적은 예상보다 좋았다는 평가입니다. 이날 지스타조직위원회에 따르면 대회 첫날인 지난 19일 온라인 방송 트위치로 생중계한 지스타TV 누적 시청자수는 39만5141명으로 집계됐습니다.
고유시청자수는 23만693명을 기록했습니다. 고유시청자는 지스타TV를 방문한 개별 시청자 수를 의미합니다. 누적 시청시간은 239만9471분(3만9991시간)이었습니다.
둘째날인 20일에는 지스타TV 동시접속자가 5000명 내외를 유지하며 국내 트위치 전체 시청자 2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지스타조직위원회 내부에선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평가에 고무적인 분위기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동안 오프라인 행사장에선 대규모 부스를 차린 국내외 5~6개 업체가 게임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습니다. 이에 비해 소규모 부스를 꾸린 업체들은 게임팬들의 이목을 끌지 못해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대회 첫째날부터 지스타TV를 통해 콘텐츠를 지켜본 한 관람객은 "오프라인 행사장에선 대형 부스를 차린 업체들을 중심으로 관심을 받는 경향이 있다"며 "이번에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더 다양한 게임들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지스타 2020 메인 스폰서를 맡은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는 대회 첫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2017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레디 플레이어 원'이라는 영화가 게임의 미래 모습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는 인류가 식량 파동으로 위기에 몰린 현실 세계 대신 '오아시스'라는 VR 게임 플랫폼에서 경제·사회 활동을 펼칩니다. VR을 매개로 현실과 다른 또 다른 세계관이 열리는 것입니다. 장 대표는 이 같은 VR 세계를 화두로 던진 것입니다.
실제 코로나19 이후 VR 세계에서는 콘서트·팬미팅 등이 열리는 등 현실 세계를 일부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혔습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수 트래비스 스콧은 지난 4월 게임 세계 안에서 콘서를 열었고, 2800만명에 가까운 접속자들이 몰렸습니다.
지난해 LG유플러스에 이어 올해는 KT가 지스타에 참가해 '클라우드 게임'의 가능성도 선보였습니다. 클라우드 게임은 이용자가 서버에 설치된 게임을 원격으로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스트리밍 서비스입니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클라우드 게임은 콘솔 게임이 강세인 선진국에선 시장 판도까지 바꿀 '게임 체인저'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게임사를 비롯해 통신사, IT부품사까지 산업을 크게 확대할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KT는 '게임박스'를 통해 올해 처음 열린 e스포츠컵을 구성했습니다. 게임박스는 월 4950원의 이용료만 내면 110여종의 게임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KT의 클라우드 게임 서비스입니다. 올해 e스포츠컵에선 '더 킹 오브 파이터즈98'로 대회가 열렸습니다.
지난해에는 '클래시 오브 클랜', '브롤스타즈' 등을 만든 슈퍼셀을 비롯해 구글, 미호요, 에픽게임즈, 아이지지 등의 글로벌 업체들이 지스타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에 이들 업체 모두 대회 참가를 포기했습니다.
국내 대표 게임사인 넥슨·넷마블·엔씨소프트 중에서도 넥슨과 엔씨소프트만 대회에 참여했습니다. 엔씨소프트는 그마저도 '지원업체'로만 이름을 올렸습니다.
조직위원회 입장에선 이들 대형 게임업체들이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행사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 게임업체 관계자는 "직접 하는 게임 대신 '보는 게임'이 업계 화두로 떠오르면서 이 같은 형태의 행사는 개별 업체들도 줄곧 해왔던 것"이라며 "개별 게임사가 확실히 이득이라고 느낄만한 콘텐츠를 발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위원회가 하루 빨리 '온라인 전시회'에서도 수익을 내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온라인 행사는 오프라인과 달리 대규모 전시 비용과 입장료 등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번 대회는 온라인 채널에서 무료로 열렸습니다.
반면 대회 개최비용은 행사장을 차렸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스타 조직위 관계자는 "(온라인으로 진행했다고 해서) 비용이 크게 줄지는 않았다"며 "코로나19 이후 열린 첫 행사였던 만큼 수익성보다는 게임 팬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주려고 했던 것"이라고 했습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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