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체생검 전문기업 싸이토젠은 국내외 액체생검 기업과는 조금 남다른 길을 가고 있다. 혈관 속에 떠다니는 살아있는 암세포(혈중종양세포·CTC)를 찾아내 분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암세포의 DNA를 검출해 진단하는 대다수 암진단 업체들과는 다르다. 국내에서 CTC로 액체생검을 하는 곳은 싸이토젠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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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가 사멸하는 과정에서 나온 DNA나 단백질 조각은 ‘과거’라 할 수 있죠. 반면 살아있는 암세포의 DNA에는 ‘현재’의 정보가 들어있습니다. 어떤 방식의 항암 치료를 진행할지를 결정하는 데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전병희 싸이토젠 대표는 자사 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액체생검 업체들은 대개 암세포가 파괴되고 남은 DNA를 핏속에서 검출한다. 반면 싸이토젠은 살아있는 암세포를 통째로 걸러낸다. 지름 5㎛의 사각 구멍을 촘촘하게 뚫은 손톱만 한 크기의 칩에 혈액을 떨어뜨려 암세포만 거른다. 암세포의 크기는 7㎛ 안팎이어서 여기에 걸러지고 이보다 작은 적혈구와 백혈구는 빠져나간다. 뜰채를 이용해 쌀알과 콩을 걸러내는 걸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외부의 물리적인 힘을 인위적으로 가하지 않고 오로지 중력만 이용하기 때문에 암세포에 손상이 가지 않는 것도 이 회사 기술의 강점이다. 과거 금속코팅을 한 나노물질을 암세포에 붙게 만들고 자성으로 암세포만 유인하는 방식으로 CTC를 골라내는 방식의 시도가 있었다. 미국의 바이오기업 셀서치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나노물질을 다시 떼어내는 과정 중 암세포가 죽거나 훼손되는 문제가 생겼다. 전 대표는 “외력 없이 암세포만 걸러내는 싸이토젠의 반도체 공정은 어지간한 인프라가 받혀주지 않으면 따라하기 어렵다”며 “관련 특허만 100여개를 등록해둬 후발주자의 진입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싸이토젠식 액체생검’의 장점은 정확도다. 부분 부분 끊어진 채로 돌아다니는 암세포 DNA 조각 대신 살아있는 암세포의 단백질과 RNA를 기반으로 염기서열을 분석하기 때문에 정확도 면에서 우위에 있다는 설명이다. 전 대표는 “혈중 종양 DNA(CTD)만으론 허셉틴 같은 표적항암제나 항체·약물접합체(ADC)의 순응도를 정확하게 알기 어렵다”며 “CTC를 통해 RNA와 단백질 등을 분석해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살아있는 암세포의 염기서열을 곧장 분석할 수 있다 보니 활용방안도 다양하다. 가령 일정 간격으로 피를 채취해 분석함으로써 암세포 돌연변이의 변화를 추적하는 ‘연쇄 생검(serial biopsy)’도 가능하다. 돌연변이에 따른 맞춤형 항암치료는 물론 치료 도중 내성이 생기는지도 꾸준히 관찰할 수 있다. 비용이 만만찮은데다 환자 고통이 따르는 조직 생검의 한계를 CTC 방식 액체생검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발 여부도 빠르게 알 수 있다. 전 대표는 “최근 다이이찌산쿄와 공동으로 진행한 임상 1상에서 좋은 결과를 얻어 곧 발표 예정”이라고 밝혔다. 싸이토젠은 폐암 치료를 받은 이력이 있는 환자 252명을 대상으로 4주마다 검사를 진행했다. 그는 “폐암과 관련된 4가지 바이오마커를 확인해 컴퓨터단층촬영(CT)보다 4~6개월 전에 재발 여부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내년부터 본격 액체생검 나선다
싸이토젠은 내년 해외 사업을 본격화한다. CLIA(미국실험실표준인증)랩을 중심으로 일본과 미국, 유럽 등에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진도가 가장 빠른 곳은 미국 펜실베니아주다. 2021년 1월부터 이곳의 CLIA랩을 통해 액체생검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전 대표는 “해외서 진단 사업 매출이 본격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했다.
싸이토젠은 현재 탐색임상(전향적 연구임상)을 진행 중인 PD-L1 발현 폐암 진단키트 ‘CG104’를 공급해 매출을 끌어내겠다는 계획이다. 가령 키트루다 같은 면역항암제를 사용하기 전에 PD-L1의 양성 유무를 확인할 때 싸이토젠의 CLIA랩을 통해 액체생검을 받을 수 있게끔 한다는 얘기다. 전 대표는 “조직생검으로 얻은 TPS(Tumor Proportion Score) 결과와 우리의 액체생검 기술로 얻은 CTPS(Circulating TUmor Cell promportion Score)의 매칭률이 80%를 넘어 면역항암제를 선택하는 데 있어 유의미한 결과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싸이토젠은 내년부터 탐색임상 중인 파이프라인의 개수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PD-L1 발현을 검사하는 CG104와 골전이암 조기진단키트 ‘CG203’ 등 기존 7개 파이프라인에 9개를 추가해 파이프라인을 16개까지 확대한다. 폐암 외에도 유방암, 전립선암 등으로 적응증을 추가하기로 했다. 전 대표는 “싸이토젠은 CTC를 검출하고 바이오마커를 찾아내는 과정을 플랫폼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바이오마커를 타깃으로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암종에 대한 진단키트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싸이토젠이 파이프라인을 대폭 늘리는 이유는 글로벌 제약사와의 동반진단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다. 단기적으로 글로벌 제약사와 동반진단 관련 계약 20건을 따내겠다는 계획이다. 전 대표는 “신약 임상시험에서 동반진단을 적용하면 성공 확률이 25%, 없으면 8.5%로 알려져 있다”며 “20개 계약을 따내면 이중 4건은 임상에 성공할 수 있고 이후 동반진단에서 매출이 발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애널리스트 평가
“여러 파이프라인으로 뻗어나가는 CTC 기술”
by 김상표·이영재 연구원 키움증권
싸이토젠은 NSCLC 면역항암제의 주요 타겟 중 하나인 PD-L1 진단검사를 위한 임상을 진행 중이다. CTC와 면역세포 분리검사로 국내 유명 대학병원과 협력으로 진행되며 신뢰도 높은 PD-L1 진단으로 보다 많은 환자들에게 면역 항암치료의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12월호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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