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직무배제 부당"…전국 지·고검장도 추미애에 반기 [종합]

입력 2020-11-26 14:41   수정 2020-11-26 14:55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검찰총장에 대해 직무 정지를 명령한 것과 관련, 검찰 반발이 본격화하고 있다.

전국 고검장 9명 중 6명은 26일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에 성명서를 올려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는 검찰 중립성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추미애 장관은 재고해달라"고 요구했다. 대검찰청 중간 간부 27명도 이날 실명으로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와 직무집행정지는 위법하다는 의견을 냈다.

서울고등검찰청 조상철 검사장 등 고검장 6명은 "법무부 장관의 검찰총장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신중함과 절제가 요구되고 절차와 방식이 법령에 맞아야 한다"며 "일련의 조치들은 총장 임기제를 무력화하고 궁극적으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한다는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근 잇따른 수사지휘권 발동은 횟수와 내용 측면에서 신중함과 절제를 충족했는지 회의적이며, 감찰 지시도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수사와 재판에 관여할 목적으로 진행된다는 논란이 있다"고 했다.

또 "감찰 지시 사항과 징계 청구 사유가 대부분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절차와 방식, 내용의 적정성에 의문이 있다"며 "징계 청구의 주된 사유가 검찰총장으로서의 직무 수행과 관련돼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과도 직결되는 만큼 형사사법의 영역에서 총장의 지휘 감독과 판단을 문제 삼아 직책을 박탈하려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검찰 개혁의 진정성이 왜곡되거나 폄하되지 않도록 현재 상황과 조치에 대한 냉철하고 객관적인 평가와 판단 재고를 장관에게 간곡히 건의한다"고 했다.

김후곤 서울북부지검장 등 검사장 17명도 이날 내부망에 성명서를 올려 "대다수 검사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법치주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검찰의 민주적 통제와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고자 하는 검찰개혁의 목표가 왜곡되거나 그 진정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검찰총장에 대한 직무 정지와 징계 청구를 냉철하게 재고해 바로잡아 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이 성명서에는 김후곤 검사장을 비롯해 노정연 서울서부지검장, 이주형 의정부지검장, 고흥 인천지검장, 문홍성 수원지검장, 조종태 춘천지검장, 이두봉 대전지검장, 노정환 청주지검장, 조재연 대구지검장, 권순범 부산지검장, 이수권 울산지검장, 최경규 창원지검장, 여환섭 광주지검장, 배용원 전주지검장, 박찬호 제주지검장, 김지용 서울고검 차장, 이원석 수원고검 차장이 이름을 올렸다.

재경 지역 검사장 중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김관정 서울동부지검장, 이정수 서울남부지검장 등은 성명에 동참하지 않았다.


이정봉 대검 인권정책관 등 대검찰청 중간 간부들도 성명을 내고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와 직무집행정지는 적법절차를 따르지 않고, 충분한 진상확인 과정도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위법, 부당하다"며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은 물론이고 검찰개혁, 나아가 소중하게 지켜온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원칙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책임과 직무를 다 할 수 있도록 징계청구와 직무집행정지를 재고해 주실 것을 법무부 장관께 간곡하게 요청드린다"고 했다.

성명서에는 이 정책관과 손준성 수사정보정책관, 이창수 대변인 등을 비롯해 27명이 이름을 올렸다.

전날에는 전국 10여곳의 검찰청에서 평검사 회의가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이들 역시 회의에서 윤석열 총장에 대한 추미애 장관의 처분이 위법·부당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외에도 '이프로스'에는 추미애 장관을 비판하는 글이 연이어 올라오고 있다.

현직 검사인 김수현(30기) 제주지방검찰청 인권감독관은 "헌정 사상 초유의 총장 직무배제를 하려면 그에 걸맞은 이유와 근거, 정당성과 명분이 있어야 할텐데 직무배제 사유 어디에도 그런 문구를 발견할 수 없다"며 "너무도 황당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니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고마해라···많이 묵었다 아이가···"라는 영화 대사를 인용하며 "갑자기 이런 영화대사가 떠오르는 것은 제가 영화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고 비꼬았다.

정희도 청주지검 형사1부 부장검사(31기)는 "상급자 지시라 하더라도 그 지시가 부당한지 아닌지 깊이 고민하고 논의한 후 행동해야 할 것"이라며 "상사의 지시가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최대한 설득하고, 설득되지 않는다면 거부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고 했다.

정 부장검사는 이번 조치에 대해 "정권에 기생하는 정치검사, 그리고 협력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며 "부당한 지시는 거부합시다"라고 재차 제안했다.

이환우 제주지검 검사(39기)는 "우리는 그리고 국민은, 검찰개혁의 이름을 참칭해 추 장관이 행한 정치적 폭거를 분명히 기억하고 역사 앞에 고발할 것"이라고 했다.

김경목 수원지검 검사(38기)는 "'소위 집권세력이 비난하는 수사를 하면 언제든지 해당 세력 정치인 출신 장관이 민주적 통제,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검찰총장을 내칠 수 있다'는 뼈아픈 선례가 대한민국 역사에 남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진정한 검찰개혁은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더라도 영향받지 않고 절제된 검찰권을 공정하게 행사하는 것으로 이해해 왔다"며 "그런데 법무부장관의 권한 행사가 이전 집권세력이 보여주었던 모습과 다른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김창진 부산동부지청 형사1부 부장검사(31기)는 "이제는 다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며 "후배 검사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 검사로서 목소리를 내야 할 때인 것 같다"고 썼다.

올해 2~8월 대검 형사1과장을 맡으며 검언유착 사건을 담당했던 박영진 울산지검 형사2부장도 "우리는 대한민국 검사입니다"로 끝나는 글을 검찰 내부통신망에 올렸다. 박 부장검사는 "현 정권과 장관이 말하는 검찰개혁의 진정성은 쓰레기통에 처박은 지 이미 오래됐다"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한 검사들을 제거하고, 앞으로도 그와 같은 수사가 이뤄질 수 있는 싹을 자르겠다는 경고"라고 했다.

김명일 한경닷컴 기자 mi73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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