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사는 고액자산가 박모씨(56)는 최근 NH투자증권의 프라이빗뱅킹(PB) 지점을 통해 이 증권사의 랩어카운트(랩)에 30억원을 맡겼다. 메자닌 사모펀드에 가입했다가 만기가 도래해 환급 받은 돈이다. 지금까지는 만기 뒤 다른 사모펀드에 잇따라 투자했지만 최근 사모펀드 부실운용 사태가 불거져 랩으로 바꿨다. 박씨는 “랩은 운용 상황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 사모펀드보다 믿음이 갔다”고 말했다.
랩은 증권사가 투자자의 의견을 반영해 자산관리를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다. 돈을 어디에 투자했는지 실시간 확인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깜깜이 투자’ 논란을 빚은 사모펀드와 다르다. 본사형 랩은 법인 비중이 70% 이상이지만 BP형 랩은 개인 자산가가 대부분이다. 본사형 랩은 펀드처럼 정형화된 상품이 많고, PB형은 투자자의 성향과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맞춤형이 일반적이다.
PB형 랩을 통해 주식이나 채권은 물론 사모펀드가 주로 투자했던 메자닌도 살 수 있다. 메자닌에 투자할 때는 PB가 편입 상품을 투자자에게 미리 알려주고 동의를 받는다. 다만 메자닌을 사려면 최소 수십억원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김유성 KB증권 투자솔루션센터장은 “메자닌을 사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 검증을 거쳐 우량 메자닌 매수를 투자자에게 제안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마다 집중 육성하는 랩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신한금융투자, NH투자증권은 사모펀드에서 이탈하는 자산가를 잡는데 방점을 두고 최소가입금액이 수십억원 이상인 프리미엄 상품을 집중적으로 개발중이다. 삼성증권, KB증권은 랩 투자자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최소가입금액을 낮추고, 펀드처럼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는 본사형 랩을 많이 내놓고 있다. 본사형 랩도 PB형 랩과 무관하지 않다. PB형도 자산의 일부를 본사형으로 편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투자자가 증권사에 랩 가입 의사를 밝히면 증권사는 투자자의 요구에 맞춰 포트폴리오 구성을 제안한다. 이후 논의를 해 세부 내용을 조율하고 최종 결정하면 투자를 집행한다. BP형 랩은 투자자 맞춤형 운영을 하기 때문에 최소 가입금액은 수십억원 이상이다. 실제로는 100억원 이상을 넣는 투자자가 많다. 본사형 랩은 최소가입금액이 5000만원 이하인 상품도 있다.
본사형 랩은 같은 분야의 공모펀드보다 수익률이 좋다. 중국에 집중 투자하는 랩의 연초 이후 수익률(25일 기준)은 50~60% 수준이다. 같은 분야 공모펀드(설정액 10억원 이상)의 평균 수익률이 이 기간 30.0%인 것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함록 미래에셋대우 선임매니저는 “주식형 펀드는 안정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수십개 이상의 종목이 편입되지만 랩은 10~20개 정도만 담는다”며 “집중적이고 기민한 관리가 가능해 적은 수의 종목만 투자해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랩 시장 성장의 ‘그늘’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랩은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전문인력과 인프라를 많이 갖춰야 한다”며 “수익성이 있으려면 투자자금도 많이 유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팔면 그만인 사모펀드와 다르기 때문에 이러한 인력·시설을 갖출 수 없는 중소형 증권사가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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