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 경사노위의 이번 결정은 어찌보면 예고된 수순이다. 합의를 도출한 회의체인 경사노위 산하 공공기관위원회부터 경영계를 배제한 채, 정부·근로자·공익위원만 참여하는 형태로 1년 전 출범했다. 정부와 노동계가 짬짜미하고 ‘친(親)정부 성향’의 공익위원들이 들러리 서는 것 아니냐는 출발 때부터의 우려가 그대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경사노위는 ‘역사적 대타협’이라며 자찬했지만, 이번 합의는 노조를 ‘옥상옥’으로 만들고 방만 경영을 자초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여러 건 발의된 여당의 노동이사제 입법안을 들춰보면 ‘상임이사와 동일 권한 부여’ ‘상임이사 중 2인(500명 이하 공공기관은 1인) 이상 선임’ 등 해외에서 유례가 없는 내용이 가득하다. 롤모델로 꼽히는 독일조차 노동이사제는 경영진 결정이 법규에 저촉되는지 여부만 검토하는 형태로 운영된다. 공공기관 상임이사 수가 평균 2.5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노조의 과도한 경영개입 우려가 결코 기우라고 할 수 없다.
더욱 걱정인 것은 민간으로의 확산 가능성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 “공공부문과 4대 그룹부터 도입해 확산하겠다”고 언급했다. 국민연금을 통한 경영 개입, 항공산업에 대한 장악력 확대 등 일련의 흐름에 비춰볼 때 정부가 마음먹고 압박한다면 버텨낼 기업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전문성이 부족한 노조 추천인사가 이사회에 포진해 회사 이익보다 노조의 집단적 이익을 앞세울 경우 경쟁력 추락은 불 보듯 뻔하다.
노동이사제 이슈의 급부상은 공공기관 개혁에 조종(弔鐘)이나 다름없다. 노동이사제와 마찬가지로 대선공약인 직무급제 도입에 대해 경사노위가 ‘노사합의를 통한 자율적·단계적 추진’으로 물러난 데서도 잘 드러난다. 반면 노동생산성 제고와 고용촉진에 필수인 파견근로와 탄력근로제 확대,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 시급한 노동개혁 논의는 한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 노조법 개정,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에 이어 노동이사제까지 더하면 한국은 명실상부한 ‘노조 천국’이 되고 말 것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