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부자들, 사모펀드 대신 '랩'으로 돈 굴린다

입력 2020-11-26 17:34   수정 2020-12-0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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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에 사는 고액자산가 박모씨(56)는 최근 NH투자증권의 프라이빗뱅킹(PB) 지점을 통해 이 증권사의 랩어카운트(랩)에 10억원을 맡겼다. 메자닌 사모펀드에 가입했다가 만기가 도래해 환급받은 돈이다. 지금까지는 만기 뒤 다른 사모펀드에 잇따라 투자했지만 최근 사모펀드 부실 운용 사태가 불거져 랩으로 바꿨다. 박씨는 “랩은 운용 상황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 사모펀드보다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사모펀드 대신 랩 찾는 자산가들
‘슈퍼 리치(자산가)’들이 최근 잇따라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사모펀드에서 랩으로 발걸음을 돌리면서 랩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2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가 판매한 지점형(PB형) 랩 잔액은 연초 4조2950억원에서 지난 9월 5조7092억원으로 32.9% 늘었다. 사모펀드 설정액이 지난해 월평균 9조2191억원에서 올 1~10월 5조803억원으로 급감한 것과 상반된다.

랩은 증권사가 투자자의 의견을 반영해 자산 관리를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다. 돈을 어디에 투자했는지 투자자들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깜깜이 투자’ 논란을 빚은 사모펀드와 다르다. 본사형 랩은 법인 비중이 70% 이상이지만 PB형 랩은 고객의 대부분이 개인 자산가다. 본사형 랩은 펀드처럼 정형화된 상품이 많고, PB형은 투자자의 성향과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맞춤형이 일반적이다.

PB형 랩을 통해 주식과 채권은 물론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전환사채(CB) 등 메자닌 상품에도 투자할 수 있다. 메자닌에 투자할 때는 PB가 편입 상품을 투자자에게 미리 알려주고 동의를 받는다.

증권사 간 랩 서비스 경쟁 치열
PB형 랩 분야에서 가장 앞서가는 증권사는 미래에셋대우다. 이 증권사의 PB형 랩 설정액은 2조8609억원(9월 말 기준)으로 2위 이하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이어 삼성증권 7410억원, 하나금융투자 3956억원, 신한금융투자 3836억원, 한국투자증권 2462억원, NH투자증권 2419억원 등이다. 김덕재 NH투자증권 랩운용부장은 “고액 자산가 가입자를 대상으로 세무나 부동산 자문 서비스를 제공하고,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는 등 자산가를 잡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마다 집중 육성하는 랩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신한금융투자, NH투자증권은 사모펀드에서 이탈하는 자산가를 잡는 데 방점을 두고 최소 가입금액 기준이 높은 프리미엄 상품을 집중적으로 개발 중이다. 삼성증권, KB증권은 랩 투자자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최소 가입금액을 낮추고, 펀드처럼 간편하게 투자할 수 있는 본사형 랩을 많이 내놓고 있다. 본사형 랩도 PB형 랩과 무관하지 않다. PB형도 자산의 일부를 본사형으로 편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모펀드에 비해 수익률 ‘월등’
PB형 랩은 투자자 맞춤형인 까닭에 수익률 평균을 내기가 쉽지 않다. 다만 연 3~4% 정도의 안정적인 수익률을 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증권사 측 설명이다. PB형 랩은 수수료가 순자산(NAV)의 2~3% 수준이기 때문에 이를 제하고 목표 수익률을 맞추려면 5% 이상의 성과를 올려야 한다. 최근에는 투자자 유치를 위해 기본 수수료 없이 성과보수체계를 도입한 곳도 있다. 성과보수는 수익의 15~20% 수준이다.

본사형 랩은 같은 분야의 공모펀드보다 수익률이 좋다. 중국에 집중 투자하는 랩의 연초 이후 수익률(25일 기준)은 50~60% 수준이다. 같은 분야 공모펀드(설정액 10억원 이상)의 평균 수익률이 이 기간 30%인 것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함록 미래에셋대우 선임매니저는 “주식형 펀드는 안정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수십 개 이상의 종목을 편입하지만 랩은 10~15개 정도만 담는다”며 “집중적이고 기민한 관리가 가능해 적은 수의 종목만 투자해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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