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변화의 시대

입력 2020-11-26 17:56   수정 2020-11-27 00:05

어느새 한 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이 왔다. 산마다 들마다 곱게 물들었던 오색 빛깔 단풍의 아름다운 정취를 여유로이 느껴보지도 못한 채 짧은 가을을 지나 보낸 것 같아 내심 아쉬움도 남는다. 매년 이맘때면 다가오는 한 해의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여러 가지 소회에 잠긴다. 그리운 사람들, 고마웠던 사람들을 추억하기도 하고 앞으로의 미래 먹거리를 구상하기도 한다.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 보면 시간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 안정된 직장에서 나와 큰 뜻을 품고 회사를 세운 뒤 온 정성을 다해 일궈온 지도 어느덧 30년이 돼간다. 쏜살같이 흘러온 세월이지만 그동안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독자적인 기술 개발에 성공해 환희에 찼던 순간, 회사의 성과를 인정받았던 영광스러운 기억들도 물론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나에게 보다 더 의미 있게 다가온 것은 거세게 일렁이는 변화의 물결 속에서 걱정과 두려움을 밀어내고 새로운 도전, 새로운 출발을 했던 순간들이었다. 사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내가 사업을 영위해 올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풍족한 성과와 달콤한 결실을 맺었던 순간이 아니라 위기의 국면마다 용기를 내 새로운 방향으로 내디뎠던 그 작지만 큰 한걸음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출발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도전해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감내하기보다는 지금까지 해왔던 방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인간 본성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진 오늘날, 현재의 모습에 안주하는 태도는 곧 퇴보를 의미한다. 특히나 기업 경영의 영역에서 그 퇴보는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

2010년 글로벌 시가총액 상위 10개사 가운데 10년이 지난 올해 6월 말에도 이름을 올린 기업은 단 2개사뿐이라고 한다. 또 상위 10개사 중 절반이 20여 년 이내에 새롭게 설립된 회사라고 한다. 업력이 오래된 기업들도 대부분 변화에 발맞춰 새로운 도전과 혁신에 사활을 걸어 생존할 수 있었다.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적자생존을 넘어, 혁신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혁자생존’의 시대인 것이다.

기업의 혁신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표적인 것이 50년 전에 머물러 있는 주주총회 제도다. 기술적으로 가능함에도 전자주주총회는 아직 도입되지 않았고, 감사(위원)선임 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의결권을 3%까지만 인정하는 ‘3%룰’ 등 기업에 큰 부담을 주는 의결권 기준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익숙함에 안주하는 순간 낡고 약해진다. 아무런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것이 결국 가장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곳에 우리의 미래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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