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들어 기름보일러는 비교적 저렴한 연료 가격과 높은 열효율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름 저장고에 기름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가 어려운 게 단점이었다. 기름 보충 시기를 놓치면 저장고 내부에 유입된 공기를 제거해야만 다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서비스 기사가 올 때까지 추위에 떨어야 했던 것은 물론이다.
당시 로켓트보일러는 알림음을 내는 시스템을 개발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연료 보충 시기가 오면 실내온도조절기가 소리로 미리 알려주는 식이다. 이 소리가 ‘찌르르~ 찌르르~’.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비슷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편리함이 입소문을 타면서 ‘귀뚜라미 소리 나는 보일러를 사고 싶다’는 소비자가 갑자기 많아졌다”고 말했다. 이에 신형 기름보일러 이름을 귀뚜라미 보일러로 지었는데 대박이 났다. 어느덧 상호인 로켓트보일러보다 브랜드인 귀뚜라미가 더 유명해졌다.
1989년에는 아예 친근한 느낌의 귀뚜라미로 상호를 변경했다. 보일러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가을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는 점도 개명에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이렇게 시작된 기름보일러 인기는 1990년대 가스보일러로 이어졌다. 귀뚜라미는 ‘거꾸로 타는 가스보일러’를 시작으로 ‘4번 타는 가스보일러’, ‘거꾸로 콘덴싱 가스보일러’, ‘AST 콘덴싱 가스보일러’, ‘거꾸로 NEW 콘덴싱 가스보일러’ 등 친근한 한국어 이름을 붙인 보일러를 연이어 성공시켰다.
이 같은 보일러 기술 진화를 진두지휘한 이는 창업자 최진민 회장(사진)이다. 최 회장은 국내 최초로 아파트에 연탄보일러를 시공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962년 서울 공덕동에 들어선 마포아파트에 그가 개발한 연탄보일러가 처음 적용됐다.
귀뚜라미 관계자는 “아파트에 아궁이를 넣을 수 없어 보일러를 개발해 난방 시스템 공모에 응모했는데 선택됐다”고 전했다. 이 보일러가 가정용 보일러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최 회장이 이끄는 귀뚜라미는 보일러 전문 기업에서 종합에너지 그룹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난방만 공급하던 업체에서 난방, 냉방, 공조(공기정화) 등 통합 시스템을 제공하는 회사로 도약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 50년간 급변하는 시장 환경에 발맞춰 끊임없이 기업을 혁신하고 새로운 성장엔진을 확보해 대한민국 주거환경 선진화에 기여하면서 국민보일러로 자리매김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과감하게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이어가며 100년 기업으로 발돋움해 가겠다”고 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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