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양 사건'의 전말 [종합]

입력 2020-11-27 11:23   수정 2020-11-27 16:30


'꼬꼬무'를 통해 1987년 발생한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이 재조명됐다.

지난 26일 밤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시즌1의 마지막 이야기 '침묵의 4박 5일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이 공개됐다. 방송 후 포털사이트에는 해당 사건 키워드가 검색어로 오르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꼬꼬무'는 오대양 사건의 전말을 짚었다. 오대양 사건을 단독 보도했던 사회부 기자와 당시 현장 감식을 총지휘한 경찰 그리고 살아남은 회사 직원들의 증언을 통해 미스터리한 그날의 이야기를 생생히 전했다.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실의 적, 믿음에 시청자들은 시선을 집중했고 이야기 친구들은 눈물을 흘리며 입을 틀어 막았다.

1987년 8월 24일 대전, 3년차 사회부 기자 윤모 씨는 '사스마와리'(경찰서를 도는 것) 중이었다. 사스마와리 코스는 병원 응급실, 장례식장, 경찰서였다. 윤 기자는 마지막 코스인 대전서부경찰서에 갔다.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새벽 6시인데 4명, 5명이 앉아있는데 눈이 풀려 있었다. 피곤한게 아니었다. 의지가 없는 눈이었다. 아바타 같은 조종당하는 눈빛이었다"고 회상했다.

경찰 조사를 받고 있던 사람은 13명으로 다 같은 회사 직원이었다. 며칠 전 중년 부부를 회사 창고에 감금하고 12시간 동안 집단 폭행을 했다는거다. 이유는 채권포기각서 때문이었다.

조직폭력배나 할 법한 일들을 평범한 20~30대 젊은이들이 했다. 윤 기자가 캐물었지만 다들 대답을 하지 않았다. 폭행 당한 중년 부부는 주유소를 몇개나 운영하던 사업가였다. 부부의 자식은 7명이었는데 그들 모두 이 회사의 직원이었다. 큰딸은 사장의 비서, 사위는 상무였다. 먼저 취직한 후 동생들을 추천했다고.

이 회사는 민속 공예품을 만드는 회사로 대통령상도 받고 88올림픽 공식 지정 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전에 본사, 공장이 있고 용인에도 공장이 있었다. 사회사업에도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보육시설, 초중고대학교 지원하는 학사 운영, 직원 기숙사 생활 보장, 생필품까지 지원해줬다. 우선적으로 직원의 가족을 채용하는 전통도 있었다. '꿈의 직장'이나 다름 없었다.

회사 사장의 이름은 박순자. 자수성가한 여성 사업가라며 대전에선 그를 칭송했다. 남편은 도청의 고위 공무원이었기에 신뢰가 아주 두터웠다. 주유소 운영하는 부부도 신뢰할 수 밖에 없어서 사업자금을 투자했다고 한다. 당시 대전 18평 아파트 시세는 1300만 원 선, 이 부부는 무려 5억을 빌려줬다고. 이후 이 부부가 목돈이 필요해 큰딸에게 다시 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일부만이라도 회수하겠다고 하자 딸이 사장님과 직접 이야기 하라고 전했다. 그렇게 중년 부부는 대전 본사로 찾아갔다.

건물 곳곳에서 직원들이 중년 부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문을 여는 순간 젊은 사람들이 부부를 둘러싸고 문을 걸어잠궜다. 직원들은 창고로 부부를 밀어 넣더니 폭행하기 시작했다. 폭행 후 채권포기각서를 들이 밀었다. 더 충격적인 건 그 현장에 큰딸과 사위도 있었는데 말리지 않고 부모가 맞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결국 지장을 찍고 풀려났고 이 부부는 경찰에 고발했다.

윤 기자에 따르면 박순자 사장이 경찰에 붙잡히자 방송국 카메라가 들이닥쳤다. 잡혀온 박순자 사장은 그 자리에서 졸도를 했다. 이후 병원에 간 박 사장과 자식 셋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후 그 회사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채권자들의 숫자는 상상 초월이었다. 이틀만에 100명 이상. 액수를 합산해보니 80억, 현 시세로 260억이라고.

박 사장은 가난한 사람들의 돈을 사업자금으로 쓰고 남는 이득은 모두 돌려주겠다며 돈을 빌렸다. 이자 지급은 은행 계좌로 이용하고 지급일은 1시간도 어기지 않았다. 이자율은 무려 원금의 30~40%정도였다고 한다. 3년간 투자자들에게 이자를 지급해왔다. MC들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돈을 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박순자에게 돈을 빌려주려면 뒷배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라며 "대전의 천사라 불린 박 사장은 알고보니 대전의 큰손이었다"고 설명했다.

윤 기자는 공장에 대해 본격적으로 취재를 시작했고 공장을 찾았더니 작업장도 제품이 있었지만 이 공장에서 제조한 흔적은 없었다고 했다. 이후 경찰은 단순 폭행에서 대형 사기 사건으로 수사 방향을 전환했다. 박 사장은 지명수배가 됐다.박사장의 남편도 아내와 아이들을 찾기 시작했다. 회사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대전 본사에 있던 직원, 보육 시설의 아이들까지 모두 사라졌다. 한날 한시에 80명이 사라진 것이다. 용인 공장도 텅 비어있었지만 단 한사람 주방에서 일하던 장씨 아줌마가 있었다. 남편과도 안면이 있어 사람들의 행방을 물었지만 '아무도 없다', '계속 모른다'고 일관했다.

남편과 기자, 경찰 등이 이 공장을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그림자도 못 찾았다. 나흘 째 되는 날, 경찰에 제보 전화가 걸려왔다. "사람들이 다 용인 공장에 있다"는 전화였다. 창고 안을 뒤지던 경찰이 작은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창고 안쪽 박스가 벽처럼 보일 정도로 채워져 있었다. 박스 너머를 살펴본 경찰, 그 뒤에 사람들이 있었다. 49명이 3박 4일간 숨죽이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머지 30명 남짓의 사람의 행방이 묘연했다. 경찰은 숨어있던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했지만 모두 묵비권이었다. 발견되지 않은 사람들 명단을 확인했더니 특징이 있었다. 투자 유치를 많이 받아온 사람들이었던 것. 박스 뒤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돈을 적게 빌린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주업무는 공예품을 제조 하는 것이 아니라 돈 빌려오는 사람들이었다. 혈연, 지연, 학연을 총동원해 박 사장과 직원들이 돈을 끌어 모았다.


남편이 주방 장씨 아줌마를 추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날 오후 장 씨가 사시나무 떨 듯 떨며 찾아왔다. "공장에 찾으시는 분들이 있다"면서. 천장엔 작은 구멍이 나 있고,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찾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장 씨는 말했다. 천장에 올라가 손전등을 켜는 순간 속옷차림의 한 남자가 보였다. 불러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더 위쪽을 봤더니 서까래에 목을 멘 것이었다. 그 남자가 공장장 최모씨다.

장 씨는 "다른 사람들도 다 저기 있는데 불러로 대답이 없다"고 했다. 남편은 상황을 알고자 사람을 불러 모았다. 천장을 뚫어 올라가 보니 목을 맨 공장장 옆에 사람들이 누워있었다. 12명의 사람들이 사망한 상태로 2중, 3중으로 쌓여있었다.5m 더 떨어진 곳에 시신이 더 있었다. 박순자 사장과 아이 셋의 시신까지 있었다.

4박 5일동안 찾지 못한 박 사장과 직원들은 천장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 미스터리한 점은 이 시신들의 상태였다.모두 속옷, 잠옷 차림이었고 손은 결박이 되어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목을 조른 흔적이 있었다. 31명은 교살, 공장장만 자살로 판명이 났다.

부검결과 독극물, 마취제도 없었다. 사망 추정 시간은 그날 29일 새벽 1시부터 아침까지였다. 박 사장의 남편과 식당 아줌마가 이야기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변사체 피살 뒤 운반이 가장 유력한 가설이었다. 천장 위로 올라가보면 엉성한 판들이 붙어있다. 판 아래는 샤워실. 천장 위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지문이 찍혀 있었다. 천장 바닥이 석고보드였다. 사람 무게를 견디는 건 어려워 보였다.

1992년 '그것이 알고싶다'' 제작진은 세트를 지어 재연했다. 20cm 폭의 시멘트를 밟고 사람들이 통과? 시체를 혼자 둘러메고 갈수 없었을 것. 당시 현장 감식반도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렸다. 가장 미스터리한 것은 32명의 시신 중 어느 누구도 저항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경찰은 스티로폼 사이에 종이 찢은 조각을 발견했다. '절대로 입 닫아라. 이미 의식 없으시다. 네 시간 전부터 다섯명 정도 갔다. 오늘 중으로 다 갈 것 같다. 성령인도로 너만 버텨라'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천장에 있던 사람이 장 씨에게 보내려던 쪽지였다.

생존자이면서 모든 상황을 알고 있었던 장 씨는 결국 경찰의 계속된 추궁에 "박순자 사장은 교주고 나머지는 신도"라고 진술했다. 이 회사의 이름은 '오대양'. 민송공예품 회사가 아닌 종교 단체였다.

박순자 사장은 자신이 오대양을 주관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그는 과거 암으로 사망선고를 받았었는데 기도로 완치됐다면서 그 이후로 종교에 심취했고 결국 자신만의 종교를 창시했다. 그는 신도 확보를 위해 사회사업가로 포장했다. 복지사업을 하고 투자자에겐 확실한 이자로 신뢰를 확보한다. 신뢰를 쌓은 후 오대양에서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고. 오대양의 교리는 88년 말세론이었고 구원받으려면 교주의 지시를 따라야 했다. 오대양 직원들은 채권자이면서 채무자였다. 돌이키기에는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오대양은 부부간도 각방을 쓰도록 했다. 교주의 지시를 어기면 신도들 끼리 '사랑의 매'를 때리게 했다.

사건이 터지자 박순자는 자식 셋과 용인 공장에 갔고 신도들 모두를 모이게 했다. 다 빚진 사람들이었다. 천장에 숨으려는 데 너무 좁아서 80명을 다 데리고 갈 수 없었고 자신과 천장에 올라갈 31명을 추렸다.가장 열성적인 믿음을 보인 신도들을 천장에 올리고 나머지는 박스 뒤에 숨었다. 천장에 올라가지 못해 생존한 사람들은 "다 들림 받는다고 했다. 천국 소리가 들린다고 손을 잡고 있었다.같이 못 올라간 게 너무 서운했고 (교주에게) 버림당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박순자와 신도들은 스스로 천장으로 올라가 시멘트 통로 위에 각목과 합판을 깔아 은신처를 만들었다. 1.7평, 2.9평, 0.4평이었다. 이곳에서 32명이 4박 5일을 지낸 것으로 추정된다.

가장 큰 문제는 생리현상과 더위였다. 이들은 아예 먹지 않는 것을 택했다고. 당시 8월이었는데 경찰이 낮에 온도를 쟀더니 70도까지 올라갔다고. 다들 사망 후 발견시 속옷 차림이었던 이유다. MC들은 "모두 물도 못 먹고 죽는거다. 기진맥진 상태의 사람들을 하나씩 목을 묶어 조른거다. 저항을 하고 싶어도 힘이 없었을 것이다. 교주의 시신이 가장 부패가 심했다. 가장 먼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사람들은 빚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었고, 자포자기의 상태였을 것이다. 집단 자타살로 결론이 내려졌다"고 설명했다.

방송 이후 이어진 쿠키 영상에서는 장트리오와 이날 이야기 친구였던 김진수, 이현이, 손준호가 '꼬꼬무' 마지막 녹화라는 사실에 크게 아쉬워했다. 하지만 장트리오는 곧 시즌 2가 돌아올 것이라는 소식을 알리며 즐거운 마무리를 했다. 특히 장도연은 ‘꼬고무를 제2의 전국 노래자랑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꼬꼬무’ 시즌 1은 탐사프로그램과 대한민국 현대사에 중요한 사건들에 대한 관심이 젊은이들에게 잊혀지고 있고 일부 매니아층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고정관념을 깼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이야기를 들어 볼만한 이유가 있고 현재의 내 이야기와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2030세대도 남성,여성에 상관 없이 시사이슈에 깊은 관심을 둔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유튜브로 시작한 요약 클립라이브는 VOD의 소비로 이어졌고 ‘꼬꼬무’ 시즌1 마지막회는 전 연령대 중 여성 20대가 최고 시청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취재의 깊이는 깊게 하지만 설명은 가장 쉬운 방식으로 누구나 접근 가능하도록 구성한다. 그래서인지 학생들과 젊은 주부들에게 많은 피드백을 받았다. 그동안 많은 사랑을 해주신 시청자들께 감사드리며 시즌2도 단단히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 2는 내년 초 공개할 예정이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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