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통상정책은 ‘아메리카 퍼스트’ 기치 하에 미국 이익의 극대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면서 종래의 자유무역 질서를 내려놓고 미국과 특정국의 양국 간 관계를 중심으로 진행해 왔다. 필요하다면 큰 폭의 수입 관세를 설정해 수입억제 정책을 단행했다. 가장 먼저 표적이 된 국가는 중국이었고, 동맹 관계거나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된 국가들에게도 필요에 따라 높은 수입 관세를 설정했다. 이미 체결돼 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도 탈퇴하고 파리기후협정도 폐기했다.
트럼프 정권 판단으로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체의 국제관계를 단절한 것이다. 그중에서도 중국에 대해서는 높은 관세 설정, 기술이전 금지, 나아가 중국 유학생의 미국 대학 입학 제재 등 ‘적성국가’로 생각될 정도의 엄격한 통제를 가하고 있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바이든 시대의 통상정책은 많이 달라질 것으로 점쳐진다. 바이든 시대에도 대중 관계는 변함없이 엄격한 통제 내지 대립 관계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 대처 방식은 미국 대 중국이라는 양자 관계가 아닌 다자 관계가 될 것이며, 강력한 동맹을 결성해 대중국 대립을 강화해나갈 것이다.
동맹국으로는 미국과 더불어 주요 7개국(G7)을 구성하는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캐나다에 더해 한국·호주·인도가 추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TPP 재가입 문제는 불분명하나 파리기후협정 가입은 확실시된다. 바이든 정부는 환경개선과 인프라 확충을 중심으로 경제 활성화를 위한 2조 달러 투자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나아가 고용증대도 강력 추진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어 자국 고용 방어를 위한 일정 부분의 보호무역주의는 불가피할 것이다.
트럼프 시대에서 바이든 시대로의 전환에 따라 미국의 통상정책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았다. 아직은 세계에서 압도적인 경제력과 기술력을 지닌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이기에, 고도의 대외의존적 경제발전 구조를 가진 한국경제로서는 체계적이고 적절하게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을 중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의 통상정책 수립에 있어 미국의 중요성이 절대 과소평가 되어선 안 된다. 트럼프 정권의 대중 압박정책에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의 첨단기술 발전에 상당한 차질이 초래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한국이 중국 시장에서 수출 실적을 내는 것은 결국 각 수출 부문에 걸친 한국 기업의 대중 기술우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한국 기업의 기술우위를 유지해 나가려면 자체 기술개발 노력과 병행해 미국의 기업, 대학, 연구소 등 첨단기술 보유 부문과의 철저한 협력관계 유지가 요구된다. 이를 위해 대미 경상수지 흑자분을 상당히 할애해 미국의 기술 관련 부문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한국의 통상정책은 미국의 기술 부문과 체계적이고 긴밀한 관계를 맺는 것을 가장 우선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인식 위에서 한국은 바이든 정부와의 협력관계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 학교, 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한미 간 인적 네트워크 구축에 더욱 박차를 가하는 작업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번에 체결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대한 대책도 한국으로선 중요하다. RCEP는 동아시아에서 처음 발족된 경제동맹체로, 한국은 이 RCEP를 중심으로 서플라이체인(공급망)을 구축해야 한다. 역내에서 RCEP는 이미 상당히 구축된 상태다. 하지만 하나의 경제 단위로 생각하는 개념까지는 아니었으므로 차제에 RCEP를 유럽연합(EU)과 같은 개념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한국도 RCEP를 기본경제 단위로 생각해 서플라이체인을 구축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RCEP가 철저히 자유시장 경제 성격을 띠도록 일본 호주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 역내 자유시장 국가와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된다. RCEP가 자유시장 경제 성격의 경제공동체가 되면 미국 등 자유시장 선진국들과의 대립은 그만큼 약화될 것이다.
결국 바이든 시대 한국 통상정책의 핵심은 이처럼 미국과의 경제협력을 일층 강화하면서 RCEP가 자유시장적 성격의 경제공동체가 되도록 정책적 역량을 집중시키는 데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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