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인권이사회가 통일부의 대북 전단 살포 단체들에 대한 법인 설립 허가 취소와 북한 인권단체들에 대한 사무검사와 관련해 한국 정부에 “우려를 표한다”는 공식 혐의서한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통일부가 북한을 향해 ‘백신 공유’ 등 인도적 지원을 연일 강조하는 가운데 정작 북한 인권단체에 대해서는 표적 검사를 했다는 의혹의 유엔의 공식 혐의서한을 받으며 ‘이중잣대’ 논란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29일 한국 정부의 25개 북한 인권단체에 대한 표적 검사 등에 대한 혐의서한과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공식 답변을 공개했다. 한국경제신문의 취재 결과 유엔 인권이사회의 혐의 서한은 한국 정부에 대해 “명확한 사유없이 북한의 인권 상황과 탈북민의 재정착과 관련한 시민사회 단체 중 특정 단체들에 대한 검사에 우려를 표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혐의서한은 이어 “일부 단체들에 대해 ‘통일부 승인 비정부기구(NGO)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관련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고 한 점도 우려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통일부의 북한 인권단체들에 대한 사무검사를 겨냥했다. 통일부는 지난 7월 “대북 물자 살포 과정에서 국민 여론이 악화되고 접경 지역 주민들과 충돌 직전까지 가는 등 사회적 위험 요소가 현저하게 증가했다”며 북한 인권 및 탈북민 정착 지원 분야와 관련된 25개 단체에 대해 사무검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통일부는 이에 앞서서는 대북 전단(삐라)과 물품 등을 북한에 보낸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 등의 단체에 대해 “정부의 통일 추진 노력을 심대히 저해하는 등 설립 허가 조건을 위배했다”며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하기까지 했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대북전단 살포 문제를 비판한 직후 일사천리로 진행돼 야권에서는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해당 조치가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의 목적에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통일부는 이 법을 해당 사무검사의 근거로 삼고 있다. 혐의서한은 “이 법의 목적은 비정부기구의 공익 활동을 촉진·보장·지원·존중하는 것”이라며 “시민 사회 공간(civic space)을 약화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통일부가 해당 단체들에 대해 법인 지위를 박탈하면 세금 면제와 보조금 등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유엔 인권이사회의 혐의서한에 대해 한국 정부는 주제네바대표부 명의를 통해 공식 답변을 보냈다. 공식 답변은 “북한 인권 상황의 중요성도 인지하고 이들 단체의 긍정적인 측면도 인정한다”면서도 “비정부기구의 활동은 입헌주의, 대중으로부터의 지지, 사회적 가치의 균형에 부합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공익 증진에 기여하는 활동이라 할지라도 남북 관계, 군사 대치의 현실적인 위험성 등 다른 사회적 가치와 충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무 검사가 특정 단체를 차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당 단체들의 업무 프로세스를 증진하기 위한 것이라고도 설명했다.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에 대한 법인 설립 허가 취소와 관련한 우려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반박했다. 정부는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 법원, 접경 지역 주민들은 반복적으로 대북 전단 살포가 남북 협정, 국내법을 위반하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킨다는 점을 들어 중단해달라고 요청했다”며 “대북 전단 살포는 법에 의해 라이선스 박탈의 사유가 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15페이지 분량의 공식 답변을 발송한 가운데 ‘국제 망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백신과 치료제를 북한과 나눠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연일 대북(對北) 인도적 지원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유엔 인권이사회는 한국 정부를 향한 공식 혐의서한을 보내며 ‘탈북민이 설립한 단체 두 곳의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고 표현하며 한국 정부가 탈북민들의 인권을 외면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대북 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의 신희석 법률분석관은 “유엔 혐의서한은 북한인권, 탈북민 정착지원 단체들에 대한 사무검사, 특히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상 NGO 지위 박탈 협박에 우려를 표명한 것”이라며 “비영리단체들을 공공, 사회 가치 같은 모호한 잣대로 규제해야 한다는 정부 답변서의 주장은 민주주의가 아닌 독재정권의 세계관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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