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검찰총장이 운명의 한 주를 맞는다. 윤 총장이 낸 직무배제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법원 심리와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이번 주에 모두 열리고, 그 결과도 나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윤 총장의 운명뿐만 아니라 차기 대선 구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30일 윤 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낸 직무 배제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사건 심문을 갖는다. 그 결과는 심문 뒤 1~2일 안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신청이 인용되면 윤 총장은 직무에 복귀한다. 반대로 기각되면 윤 총장의 직무배제 상태가 유지된다.
12월 2일에는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가 회의를 열고 윤 총장의 징계 여부 및 수위를 결정한다. 징계 청구권자인 추 장관은 불참하고, 의결은 위원 과반수 찬성으로 이뤄진다. 징계위는 위원장인 법무부 장관과 차관, 법무부 장관이 지명 또는 위촉한 인사 등 총 7명으로 구성된다. 이 때문에 징계는 추 장관의 뜻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징계 수위는 해임과 면직·정직·감봉·견책 등이다.
여권은 징계가 결정되면 윤 총장에 대한 공세 수위를 한 껏 높인다는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윤 총장 사퇴로 정리한 분위기다. 이낙연 대표는 지난 24일 윤 총장 직무배제 명령이 내려진 직후 “윤 총장은 공직자답게 거취를 결정하라”며 사실상 사퇴를 요구했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징계가 결정되면 윤 총장이 스스로 물러날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할 것”이라고 했다. 관건은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이다. 이 당직자는 “문 대통령은 징계위원회의 결정이 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나서기 어려워 그간 침묵을 지켜왔다”며 “징계위 결정이 나면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결단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에서는 추 장관과 윤 총장의 동반 사퇴설, 윤 총장 해임 뒤 추 장관 순차적 사퇴설 등이 나온다. 일각에선 검찰 개혁 명목으로 윤 총장이 물러나도 추 장관은 검찰 개혁 명분으로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문 대통령이 임기가 보장된 윤 총장만 물러게 하기엔 부담이 클 것”이라며 “연말 개각 시점에 맞춰 추 장관과 윤 총장이 동반 퇴진이든, 순차적이든 모두 물러나게 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추 장관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점도 동반사퇴론에 무게를 싣는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전국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지난 25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6.3%가 추 장관의 윤 총장 직무정지 조치를 ‘잘못한 일’이라고 평가했다(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잘한 일’이라는 평가는 38.8%로 훨씬 적었다.
관건은 윤 총장의 선택이다. 문 대통령이 해임하지 않는 한 스스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물러난다면 대선판에 뛰어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정치권은 전망하고 있다. 윤 총장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퇴임 뒤 국민들에게 봉사할 방법을 찾겠다고 했고, “(봉사) 방법에 정치도 들어가느냐”는 질문에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정치권 진입 여지를 남겨놓은 것으로 해석됐다.
윤 총장과 대학(서울대 법대)시절부터 가깝에 지내온 정치권 인사의 전망이다. “징계위 결정이 난 뒤 여권이 윤 총장에 대한 대대적 공세를 취할 것이다. 여권은 윤 총장이 정권을 흔들 원전 수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라임·옵티머스 사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정권 핵심부를 찌를 수 있는 신라젠, 우리들병원 사건도 깊게 들여다 볼 것으로 예상돼 미리 방어막을 치고 있는 것이다. 윤 총장은 문 대통령이 해임하지 않는 한 여권과 싸우다가 ‘피해자 이미지’가 극대화 되는 순간 선택을 할 것이다. 박해받는 모습이 최정점이 될 때 그만두고 나올 것이다. 대선판에 나올 생각이 있는 것 같다. 다른 선택지가 없지 않느냐.”
역시 윤 총장과 가까운 4선 출신의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윤 총장은 대선 출마 생각이 있는 것 같다”며 “대학 시절부터 지켜보니 뚝심이 있고, 리더십도 뛰어나다. 대선에 뛰어들면 정치권을 장악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정치권 기반이 약하지 않느냐는 지적에 “국민의힘 내 강력한 대선주자들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가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의원들이 따라붙을 것”이라며 “윤 총장이 정치권에 잘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다리를 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총장의 대선판 진입에 대한 국민의힘 시각은 갈라지고 있다. 김무성 전 의원은 일찌감치 “윤석열이라는 영웅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에 있다”고 했다. 조해진 의원은 윤 총장이 메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고, 장제원 의원은 “여왕벌이 나타났다”며 적극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지도부 반응은 신중하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현직에 있는 사람을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는 것은 실례”라고 여러차례 얘기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기자에게 “정치를 해보지 않고 곰삭지 않은 사람들이 정치에 와 자꾸 실패한다”며 “정치인을 인기 투표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한 바 있다.
지도부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국민의힘 당내 대선 주자들의 경쟁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윤 총장이 들어와 그에게 급격하게 힘이 쏠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권영세 의원이 “윤 총장에게 지지가 몰리면 국민의힘 다른 주자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한 발언은 이런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여권은 당초 윤 총장 사퇴 뒤 야권 유력 대선주자로 발돋움하는 것을 경계해 사퇴 주장까지는 안하다가 최근 분위가가 달라진 것은 내부 전략을 세웠기 때문이다. 선거 전략가로 통하는 한 민주당 의원의 전망이다. “윤 총장이 대선판에 함부로 뛰어들지 못하게 족쇄가 채워질 것이다. 그를 향한 각종 소송전은 대선 이후까지 진행될 것이고, 윤 총장은 검찰총장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상태에서 대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추 장관의 잇단 압박으로 피해자 이미지가 씌워지면서 지지율이 높게 나오지만, 총장을 그만두는 순간부터 지지율은 떨어질 것이다.”
반론도 적지 않다. 박형준 전 미래통합당 ‘4·15 총선’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여론 조사 속성상 밴드왜건 효과(지지율이 높은 쪽으로 지지세가 쏠리는 현상)를 갖기 때문에 윤 총장 지지 흐름은 견고해질 것”이라고 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도 “윤 총장이 대선판에 뛰어드는 순간 야권 결집의 중심축이 되면서 지지율이 강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정치권 바깥의 ‘윤석열 변수’가 대선 정국을 흔드는 것은 아이러니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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