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가는 대로 부르는 게 재즈의 매력이죠. 정해진 틀이 없으니 모든 무대가 새로워요. 다른 장르랑 결합하기도 쉽죠.”
지난 26일 서울 강남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만난 재즈 보컬리스트 나윤선(51)은 재즈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가 걸어온 길도 곧게 뻗어 있진 않았다. 어릴 적엔 성악을 배우다 뮤지컬 배우로 나섰다. 불현듯 재즈를 배우겠다고 프랑스로 떠났다. “인생 자체가 ‘잼(즉흥 연주)’이었어요. 정착하지 못하고 늘 유랑했죠. 새로운 것에 늘 목말랐고요.”
나윤선이 자기 일생처럼 자유로운 재즈 선율을 들려준다. 다음달 16일 경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나윤선 콘서트’를 통해서다. 그는 이날 지난해 4월 선보인 10집 앨범 ‘몰입’ 수록곡을 무대에 올린다. 지난해 음반 발매에 맞춰 열어온 전국 투어의 마지막 무대다. 전자음악가 여노와 재즈 피아니스트 임채선이 공연에 나선다.
공연은 종잡을 수 없을 거라 했다. 즉흥 연주인 ‘잼’을 중심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반주를 맡은 악기도 독특하다. 전자악기인 ‘모듈러 신시사이저’를 무대에 올린다. 보통 네 마디씩 기계에 저장해 연주하는 신시사이저와 달리 음절 단위로 소리를 낸다. 어떤 박자에서든 다양한 음향 효과를 연출해 즉흥 연주에 자주 쓰인다.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부터 바람 소리까지 세상에 있는 모든 사운드를 연주하는 전자악기를 써요. 노래에 언제든 애드립을 넣을 수 있죠.”
노래처럼 재즈를 받아들인 계기도 우연이었다. 나윤선은 대학 졸업 후 뮤지컬 가수로 활동했다. 대학로에서 뮤지컬 ‘지하철 1호선’ 주연을 맡은 적도 있다. 고민이 싹텄다. 연기와 춤에 재능이 없다고 느꼈다. 1995년 27세 때 대학 동기였던 재즈 베이시스트 김정렬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는 재즈를 전공해보라고 조언했다. 곧장 나윤선은 프랑스에 있는 유럽 재즈 스쿨에 들어갔다. “그 전까지 재즈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었어요. 학교에 들어가 1년쯤 지나 후회했죠. 선생님들이 ‘재즈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장르’라고 설득하지 않았다면 돌아왔을 거예요. 그렇게 버텼는데 벌써 25년 동안 재즈를 부르고 있네요.”
프랑스에서 맞닥뜨린 장벽은 ‘발성’이었다. 선천적으로 목소리가 미성이었다. 목을 긁어 허스키 음색을 내는 다른 가수를 보면 위축됐다고 했다. “다른 가수들을 흉내 낼 순 있지만 제 노래라는 느낌이 안 들었어요. 따라 하지 말고 개성을 살려보자고 마음먹었죠. 한국적인 음색을 살렸죠.”
틀을 깨니 유럽이 열광했다. 이력이 달라졌다. 나윤선은 1999년 프랑스 ‘생모르 재즈 콩쿠르’에서 대상을 탔다. 2000년부터는 동양인 최초로 프랑스 재즈스쿨 ‘CIM’의 교수로 발탁됐다. 2009년 프랑스 정부가 그에게 문예공로훈장인 ‘슈발리에’를 수여했다. 2010년 발매한 음반 ‘세임걸(Same Girl)’은 프랑스 재즈 차트에서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4주 연속 1위에 올랐다. 이듬해 2011년에는 프랑스 최고가수상을 받았다. 지금까지 매년 100회 이상 유럽과 미국을 돌며 공연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 휴식은 없다. 11집 음반 준비에 몰두하고 있다. “이번에는 고전 작품 대신 자작곡들로만 음반을 채울 겁니다. 내년에는 집과 녹음실에서만 살아야겠죠. 일상을 단순하고 간결하게 꾸려야 음악생활을 할 수 있어서요.”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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