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불확실성에 장롱·금고로…숨어버린 5만원권

입력 2020-11-30 11:38   수정 2020-11-30 14:56


5만원권 품귀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올들어 시중에 5만원권을 100장 풀면 그 가운데 고작 25장만 다시 은행으로 돌아오는 등 환수율이 급격히 떨어졌다. 코로나19 사태로 불확실성이 불거지자 비상용으로 현금을 장롱과 금고 속에 넣어두려는 수요가 퍼진 결과로 풀이된다.

현금거래가 많은 자영업자의 경기가 얼어붙은 것도 고액권이 사라진 배경으로 꼽힌다. 5만원권이 아직 시중에 나온 지 11년에 불과한 '새 돈'인 만큼 수요가 급증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은은 30일 발표한 ‘코로나 이후 5만원권 환수율 평가 및 시사점’ 자료를 보면 올 1∼10월 5만원권의 환수율(환수액÷발행액)이 25.4%에 그쳤다고 발표했다. 작년 1~10월보다 39.4%포인트 떨어졌다. 이 같은 환수율은 연간 기준으로 5만원권이 발행된 2009년 후 가장 낮았다.

환수율이란 중앙은행이 시중에 공급한 화폐량에 비해 다시 돌아온 화폐량의 비율이다. 환수율이 높으면 화폐가 시중에서 활발하게 유통된다는 뜻이고, 낮으면 유통이 둔화된다는 뜻이다. 5만원권 환수율은 2017년 57.7%, 2018년 67.4%, 2019년 60.1%를 기록했다.

올해 환수율이 낮은 것은 코로나19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현금을 보유하려는 유인이 커진 결과다. 가계와 기업이 장롱과 금고에 5만원권을 쌓아 놓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충화 한은 발권정책팀장은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자 안전자산인 고액권을 보유하려는 경향이 강화됐다"고 평가했다. 예·적금 금리(만기 1년 기준)가 연 0%대로 떨어지자 은행에 돈을 맡기려는 수요가 약화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올해 9월과 10월 저축성 수신금리는 연 0.88%이었다.

5만원권 인출 수요가 늘어난 반면 입금 금액은 줄었다. 코로나19로 매출이 타격을 입으면서 매일 수입을 정산해 은행에 넣는 자영업자 비중이 감소했다. 한은의 2018년 조사에 따르면 매출액을 현금으로 받는 비중은 자영업자가 몰린 음식·숙박업종이 18.6%로 제조업(2.2%)과 건설업(0.9%) 등을 크게 웃돌았다. 옥지훈 한은 발권기획팀 과장은 "외국인 입국자가 줄면서 면세점·카지노 주변 점포의 5만원권 입금이 급감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직전부터 5만원권의 환수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은은 5만원권 환수율은 2015~2019년 40~60%대를 오가는 등 비슷한 시기 환수율이 70~90%를 오가는 유로존의 100유로화보다 낮았다. 1만원권, 5000원권 환수율도 같은 시기 100% 안팎을 오갔다. 한은은 5만원권 환수율이 낮은 것은 발행된 지 11년 차인 비교적 나이가 젊은 화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99년부터 발행된 유로화 등에 비해 나이가 어린 만큼 폐기되는 물량이 적고 기존 1만원권 등 고액권을 대체하려는 수요가 급증하면서 환수율이 낮아졌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5만원권 수요 확대가 지하경제와는 관계가 깊지 않다고 반박했다. 김충화 팀장은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추정한 한국의 지하경제의 비중(국내총생산 대비)은 1991년 29.1%에서 2015년 19.8%로 꾸준히 하락했다"며 "5만원권 수요 증가가 모두 지하경제와 결부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5만원권 추가 발주, 한국조폐공사로부터의 신권 납품 시기 조기화 등으로 시중의 화폐 수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한국의 경제 상황이 크게 개선되지 않으면 5만원권 수요 증가세가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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