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이하 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 동부에서 벌어진 이란 핵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 암살 사건이 국제 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란은 이스라엘을 테러 당사국으로 지목하면서 중동 지역 갈등이 고조되는 양상이다.
실제로 이날 파크리자데 암살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일당들이 미리 통신망을 차단하고, 차량 속도가 떨어지는 시점을 노려 일사분란하게 처리해 사건 직후부터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가 테러 배후로 거론됐다.
이란 언론인 무함마드 아흐바즈는 30일 그가 정부 관련 기관으로부터 이날 벌어진 상세 사건 자료를 입수했다며 언론을 통해 파크리자데 피살 당시 순간을 재구성해 발표했다.
아흐바즈와 이란 현지 언론 등에 따르면 테러 당시 파크리자데는 아내와 함께 방탄 처리된 닛산 승용차를 타고 테헤란 동부 다마반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VIP인 만큼 무장 경호원이 탄 차량 2대가 그의 승용차 앞뒤에서 호위하는 상태였다.
테러가 벌어진 27일은 이란에서는 주말 공휴일인 금요일. 다마반드 지역은 이란 부유층 별장이 많은 곳으로, 파크리자데는 휴식을 위해 이곳으로 향했다. 테러범들은 처음부터 그의 차량 행렬이 회전식 교차로(로터리)에 진입해 속도를 늦춘 순간을 노렸다.
오후 2시께 3대의 차량이 교차로를 막 빠져나오는 순간 기관총 사격이 시작됐다. 이란 파르스통신에 따르면 교차로에서 약 140m 거리에 세워져있던 닛산 픽업트럭 원격 조종 기관총에서 총알이 발사됐다. 경호원들은 혼란에 빠졌고 일부는 총에 맞았다. 파손된 승용차들은 멈췄고 파크리자데는 차 안에 웅크렸다.
그러자 맞은편 차로에서 산타페 차량 한대와 오토바이 4대가 나타나더니 12명의 무장 요원들이 내렸다. 그들은 파크리자데를 차에서 끌어내 신원을 확인하곤 처형하듯 방아쇠를 당기고 빠르게 도주했다.
기관총이 설치된 픽업트럭은 증거 인멸을 위해 자폭 장치로 폭파됐다. 파크리자데는 구조 헬기에 실려 인근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결국 사망했다.
현지 언론들은 테러 현장 부근의 폐쇄회로(CC)TV는 물론 사건 직후 구조를 신속히 요청하지 못하도록 중계기 등 통신 시설도 미리 끊었다고 전했다.
경호원들이 급습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이 킬러 일당은 임무를 완성한 채 부상자 없이 현장에서 사라졌다. 현장조 12명 외에도 보급과 무기 제공 등 후방 지원에 50명이 동원됐다는 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돌고 있다.
이란군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자바드 모구이는 트위터에 "이 테러는 할리우드 액션 영화와 같았다"라는 글을 올렸다. 무함마드 아흐바즈도 트위터에 "테러 관련 일당은 정보·군사 특별 훈련을 받고 이란에 잠입했다. 그들은 파크리자데의 동선을 세세하고 정확히 알고 있었다"라고 썼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암살범 처벌을, 무함마드 바케르 칼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은 파크리자데를 살해한 배후세력에 보복하는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이란의 극우 매체 카이한은 이스라엘이 암살 배후에 있다고 확인되면 이스라엘을 공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매체는 "인프라를 파괴하고,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남기기 위해선" 이스라엘의 항구도시 하이파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스라엘 신문 '하아레츠'는 파크리자데의 암살이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과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매체는 "암살 시기는 순전히 작전적인 고려 사항에 의해 결정됐다. 이는 바이든 당선인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라며 "(이란 핵협정을 되살리려는 계획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 사회도 의견 표명에 나섰다. 지난 9월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한 아랍에미리트(UAE)는 암살 행위를 비난하고 자제를 촉구했다. 이란 핵합의 당사국인 영국도 암살 이후 중동의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터키는 "지역 평화를 깨는 테러 행위"라고 비난했다.
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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