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이 지난해 12월 초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인지했음에도 12월 말에야 세계보건기구(WHO)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베이성 우한시의 감염자 수를 절반 이하로 줄여 보고하는 등 은폐·축소 행위를 지속 시도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국 익명 의료종사자 제보…"확진자·사망자 수 축소 발표"
미국 CNN방송은 지난달 30일(이하 현지시간) 익명의 중국 의료종사자가 제보한 후베이성 질병통제예방센터 내부 기밀 문건을 소개하면서 "당시 당국이 알고 있던 내용과 대중에 공개한 내용이 여러 면에서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건에서 드러난다"고 보도했다. 중국 후베이성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4월까지 작성한 117쪽짜리의 이 문건에 따르면 후베이성에서 지난해 12월 '유행병'(epidemic)으로만 표기된 환자들이 보통 때의 20배 수준으로 증가했다. 우한뿐 아니라 이웃 도시 이창과 셴닝에서도 환자가 속출했다. 자료에 따르면 독감처럼 보이는 이 유행병의 첫 환자는 작년 12월1일 발생했다.
특히 이 문서에는 올해 2월7일자와 3월7일자의 코로나19 현황 자료도 게재됐는데, 당시 중국 당국이 밝힌 내용과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당국은 올해 2월7일 기준 전국의 신규 확진자가 2478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같은 날 기준 후베이성 보건당국에서 집계한 신규 확진자 수는 5918명이었다. 정부 발표치의 2배가 넘는 수치다.
3월 7일자 자료에서는 사망자 수치가 축소 공개된 사실이 나타난다. 당시 중국 정부가 공식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후베이성 내 사망자 누계는 2986명이었으나, 현지 보건 당국은 총 사망자를 3456명으로 집계했다.
CNN "당국 발표 내용과 문건 내용 불일치"
내부 기밀 문건을 통해 확진자가 본격적으로 급증했던 시기에 지역 보건 당국의 진단 역량이 상당히 열악했다는 점도 엿볼 수 있다. 후베이성에서 코로나19 사태 발병 후 첫 한 달 동안 환자 증상 발현 시점부터 확진 판정이 나오기까지 걸린 기간이 평균 23.3일로 기록돼 있다.전문가들은 "신종 질병을 다룰 때 겪는 어려움을 고려하더라도 23일은 지나치게 긴 시간"이라며 "진단이 이처럼 지연됐기 때문에 당국이 적시에 필요한 개입을 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크다"고 설명했다.
당시 사용된 진단 장비 자체 역시 정확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월10일 자로 표기된 감사 자료에 따르면 보건 당국은 코로나19 진단을 위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진단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감사 자료는 해당 장비가 양성 사례를 음성으로 잘못 판정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문건에는 정부 내 관료주의 때문에 후베이성 보건 당국의 코로나19 대응이 제한됐다는 내용도 담겼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에 후베이성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역학 조사, 예방정책 마련, 정책 제안 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윗선에서 내린 과제를 수동적으로 수행했고 전문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내용 등이다.
이외에도 지난해 12월 후베이성에서 예년의 20배 규모에 이르는 독감 발병이 있었다는 사실, 정부가 마련한 보건정보 네트워크가 속도가 현저히 느려 사용에 지장이 있었다는 점 등이 문건에 적힌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당시 가장 보수적인 기준으로 잡아 수치를 공개했다. 상황이 얼마나 복잡하고 혼란스러웠는지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CNN은 "이 문건들에서 하향식 관료주의와 융통성 없는 절차로 제약을 받은 비효율적 보건 체계의 모습이 드러난다. 팬데믹 초기에 있었던 정부의 명확한 실수와 제도적인 실패의 패턴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해당 문건들은 익명을 요구한 내부 고발자가 CNN에 제공한 것으로, 6명의 독립된 전문가가 진본임을 검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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