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세상이 멈췄어/ 아무런 예고도 하나 없이/(중략)/ 사람들은 말해 세상이 다 변했대/ 다행히도 우리 사이는 아직 여태 안 변했네/….” (‘라이프 고스 온(Life Goes On)’ 중에서)
방탄소년단(BTS)의 한국어 곡 ‘라이프 고스 온’이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정상에 올라 ‘K팝’의 새 역사를 썼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노래를 보여주는 ‘핫 100’ 차트에서 한국어 가사 곡이 1위에 오른 것은 이 차트 62년 역사상 처음이다.
‘라이프 고스 온’은 방탄소년단이 11월 20일 발매한 새 미니앨범 ‘BE’의 타이틀곡으로, 후렴을 제외한 대부분 파트가 한국어로 쓰여졌다. 방탄소년단 멤버 RM, 제이홉, 슈가가 팬데믹(대유행)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함께 작사·작곡했다. 방탄소년단은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가 특징인 얼터너티브 힙합 장르의 이 곡을 중저음 목소리와 한국적 감성의 멜로디로 표현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번 1위를 포함해 방탄소년단은 지난 3개월간 ‘핫 100’ 1위에 세 번이나 올랐다. 지난 8월 영어 싱글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한국 가수 최초로 ‘핫 100’ 1위에 오른 뒤 10월 뉴질랜드 출신 프로듀서 조시 685와 미국 가수 제이슨 데룰로의 곡 ‘새비지 러브’ 리믹스 버전에 피처링으로 참여해 다시 1위에 섰다. 이는 비지스(1977년 12월~1978년 3월)의 ‘토요일 밤의 열기’ 사운드트랙 이후 42년 만에 ‘핫 100’ 1위를 ‘최단 기간 세 번’ 기록한 것이다.
빌보드는 또 “비영어 곡이 ‘핫 100’ 1위를 한 것은 루이스 폰시와 대디 양키의 스페인어 곡 ‘데스파시토’ 이후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차트 데뷔와 동시에 1위에 등극하는 ‘핫 샷’ 데뷔를 두 번 이상 한 그룹은 방탄소년단이 최초다.
스트리밍 횟수와 음원 판매량, 라디오 방송 횟수 등으로 집계하는 ‘핫 100’은 곡의 대중적인 인기도를 보여주는 미국 음악시장의 핵심 차트다.《K팝 이노베이션》의 저자 이장우 경북대 교수는 “한국어 노래가 ‘핫 100’ 1위에 올랐다는 것은 K팝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진정한 미국 주류시장에 들어갔다는 의미”라며 “마니아 중심에서 일반 대중으로 K팝 시장이 크게 확대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설명했다.
닐슨뮤직 데이터에 따르면 ‘라이프 고스 온’은 이번 ‘핫 100’ 집계 기간(11월 20~26일) 미국에서 1490만 회 스트리밍, 15만 건 판매(다운로드 12만9000건, 싱글 2만 건)됐다. 라디오에선 11월 23~29일 41만 명의 청취자에게 노출됐다. 한국어 곡이어서 라디오 방송 횟수가 상대적으로 저조했다. 하지만 압도적인 음원 판매량으로 이를 넘어섰다. ‘다이너마이트’도 14위에서 3위로 뛰어오르는 역주행을 펼쳐 방탄소년단의 두 곡이 ‘핫 100 톱 5’에 자리했다.
멤버 지민은 “정말 너무너무 감사하다. 1위도 너무 감사한데 3위 안에 저희 곡이 두 개라니…”라고 기쁨을 표현했다. 이어 “사랑해주시는 아미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라이프 고스 온’이 수록된 ‘BE’ 앨범은 이번주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부문인 ‘빌보드 200’ 1위에 올라 방탄소년단은 빌보드의 메인 앨범 및 싱글 차트 정상에 동시 데뷔하는 진기록도 썼다.
박찬욱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문화산업연구센터장은 “‘라이프 고스 온’의 1위도 ‘다이너마이트’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경제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며 “특히 한국어 가사가 이룬 성과여서 국내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는 더욱 강하고 광범위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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