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미·중 신냉전 대비, 경제법규 정비해야

입력 2020-12-01 17:46   수정 2020-12-02 00:08

‘미국 우선주의’와 미·중 갈등이 초래한 불확실성을 경험한 세계는 차기 미 정부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 바이든 당선인의 외교안보 구상은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구호로 요약된다. 바이든은 주요 협력국과의 동맹 복원과 다자주의로의 회귀를 통해 규칙 수용자가 아닌, 설정자로서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대외정책 방향을 정했다.

세계질서는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바이든 당선인이 ‘민주주의를 위한 정상회의’ 개최를 추진하고 있으며, 유럽연합(EU)도 관세 문제 등으로 소원해졌던 미국과의 협력관계를 복원해 코로나19와 5세대(5G) 통신 및 사이버 공격 등 중국의 위협에 공동 대처할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미국과의 갈등 과정에서 권위주의 강화와 반미정서, 중국 중심의 다자주의를 공공연하게 내세웠다. 미국과 EU가 ‘공동의 적’으로 중국을 상정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 셈이다.

바이든은 개인 성향과 어설픈 미국 우선주의를 버무린 트럼프의 좌충우돌식 대외정책과 달리,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승계하면서도 보다 정교하고 세련된 중국 압박 정책을 구사할 것이다. 기술 우위 유지와 시장 확보 차원에서 중국과의 지속적 통상관계 확대를 추구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와의 동맹 강화를 통해 미국의 주도권을 강화하려 한다. 안보와 경제를 아우르는 통합 전략에 의한 미국의 ‘아시아 회귀’를 위해, 그동안 중국이 탐닉해 온 국력 과시와 반미정서 확산을 세계적 ‘위협’으로 간주해 활용할 것이다.

대선 과정에서 바이든은 미국이 각종 국제기구와 협정에 복귀해 영향력을 회복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과의 마찰이 불가피하다. 지난달 15일 한국과 중국을 포함한 15개국 정상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서명했다. 바이든 진영에서는 출범 후 트럼프 집권 초기에 탈퇴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복귀를 시사했다. 한국은 이미 미, 중, 아세안과 각각 FTA를 체결했을 뿐 아니라 RCEP의 일원이며, 향후 TPP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역내 자유 무역 및 투자를 지향하는 협정들이 교직(交織)하는 현상은 필연적으로 역외에 대한 배타와 경쟁, 차별을 수반한다.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자그디시 바그와티는 동시다발적 FTA 확산을 세계무역기구(WTO)가 지향하는 ‘세계화’를 갉아먹는 흰개미에 비유했다. 협정에 참여하는 이해당사자들의 정치경제적 타산으로 인해 오히려 자유 시장 질서를 저해할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세(勢) 불리기와 미국의 주도적 영향력 확보 전략에 동시에 포함된 미·중 갈등의 최전선이다.

우리가 참여하는 FTA의 ‘시장 확장’ 효과만 기대하기 어려운 환경이다. 한·중 FTA는 한·미 및 한·EU FTA에 비해 낮은 단계에 머물고 있다. TPP는 궁극적으로 EU와 같은 역내 단일시장을 구축하는 높은 단계의 경제통합을 지향한다. 특히 중국이 대(對)중국 압박과 규제를 한국을 통해 우회할 수 있다는 점을 미국 및 EU는 경계한다. 중국과 연관된 산업 영역에 대한 이들의 견제가 한국의 행보를 제약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FTA를 적극 활용하되, 미국과 서방세계의 갈등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미리 정비할 필요가 있다. 미국이 ‘공정거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국내법인 무역확장법 232조, 관세법 337조, 슈퍼 301조와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등을 동원해 국제 경제 환경 변화에 적극 대응하는 것처럼, 한국도 사전에 무역·투자, 독점, 금융, 정보통신, 고용, 세제 영역의 입법 및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한국을 이용한 중국의 규제 우회 전략을 차단하고, 중국을 빌미로 한 서방 진영의 한국 경제 압박 가능성을 줄이며, 새로운 세계질서 형성에 대비한 우리 경제의 체질 강화를 위해 서둘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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