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김치가 국제 표준이 됐다'는 중국 언론의 주장과 관련해 해당 표준이 등록된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 중국이 근거로 삼은 표준이 김치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 내 각종 문화적 산물의 '원조'임을 주장하는 중국의 '김치공정'에 제동이 걸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1일 산드린 트란차드 ISO 홍보담당(커뮤니케이션 스페셜리스트)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ISO24220은 파오차이에 대한 것이며, 해당 문건은 김치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 언론에서 이 문건이 공식적으로 통과돼 중국식 김치가 김치의 국제 표준이 됐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선, "파오차이 표준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며 "이 기준은 김치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재차 확인했다.
하지만 ISO가 공식적으로 중국의 파오차이와 한국의 김치가 다른 것이라고 밝히면서 김치의 원조가 중국 파오차이라고 주장하는 중국의 '김치공정'에 제동이 걸렸다는 해석이 나온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중국식 김치가 국제 표준으로 인정됐다면 김치 수출을 할 때 중국의 기준을 맞춰야했을 수 있다"며 "이 경우 한국식 김치는 국제 식품시장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다"고 말했다.
트란차드 담당은 "새로운 표준은 소비자협회, 학회, 민간NGO, 정부기관 등으로 구성된 기술위원회에서 결정하는데 이 과정에서 모든 이해관계자의 의견이 고려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중국이 파오차이 표준 등록 절차를 밟기 시작한 2017년부터 ISO에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중국이 파오차이를 국제표준으로 등록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한국식품연구원을 중심으로 파오차이는 김치와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며 "이같은 노력의 결과로 해당 문건에 '김치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명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ISO는 다만 현재 한국식 김치의 표준 등록은 따로 추진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농식품부는 이미 2001년 세계식품규격인 CODEX에 김치가 등록돼있는 만큼 "김치의 국제표준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추가적인 표준 제정 추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김치가 CODEX 규격에 등록된 후 중국산 김치에서 대장균군이 과다 검출돼 문제가 됐을 때 이 기준을 근거로 중국 정부에 대장균군수 기준 조정을 요구해 관철시킨 사례가 있었다.
최학종 세계김치연구소 소장 직무대행은 "최근 김치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과 지명도가 높아지면서 중국 매체의 근거 없는 주장이 나온 것 같다"며 "김치의 우수성을 보다 과학적으로 규명해 이와 같은 논란이 야기되지 않도록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치 논쟁은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영국 BBC는 이날 김치를 둘러싼 한·중간의 논란이 있다는 내용의 방송을 내보냈다. 방송에서는 "한국의 김치는 '파오차이'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공급되고 있지만,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또 다른 중국 고유의 음식이 있다"며 "ISO 문서는 이번 식품 규격이 '김치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적시했음에도 일부 중국 언론은 이와 다르게 보도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내 김치 수요가 많아 중국에서 김치를 만들어 수입하고 있다"며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의 김치는 중국의 엄격한 규제에 막혀 수출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