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으로 교차하는 수많은 선이 전시장 바닥과 벽, 천장을 가득 채웠다. 선들이 만나는 곳엔 십자형 교차로가 생기고, 그런 십자형들이 확장되면서 수많은 사각의 공간이 형성된다. 벽에 걸리거나 바닥에 놓인 작품들은 이렇게 선이 만드는 사각의 공간 어디쯤에 있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서자현(52) 개인전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의 모습이다.서자현은 프랑스 파리 네프빌 콩트 고등예술학교 창작텍스타일학과를 졸업한 뒤 홍익대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은 작가다. 국내외에서 14차례 개인전을 열었고 200회 이상 단체전에 참여했다. 뉴욕 브루클린의 J&M스튜디오 소속으로 활발히 작업 중이다.
‘현대미술의 다층적 평면구조에 대한 이론적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아날로그적 회화와 사진, 2D와 3D까지 넘나드는 다양한 디지털 작업으로 장르를 융합해왔다. 특히 원본과 사진, 이를 복제 또는 변형한 이미지의 반복으로 원본과 사본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작업을 통해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차이가 생길 수밖에 없음을 시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성경의 기반으로 믿음, 소망, 사랑, 천지창조 등 4개의 테마를 따라 회화, 사진, 디지털 프린팅, 설치 등 작가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150여 점을 소개하고 있다. 검은색 마스킹 테이프와 시트지로 펼쳐 놓은 수많은 선과 사각의 공간과 어우러진 작품들은 전체가 하나의 설치작품처럼 보인다.
서 작가에게 사각형은 중요한 작품의 구성 요소다. 내면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는 사각형이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날 수 없는 미로였다. 그땐 살아 있는 둥근 심장마저 생명이 다해가는 사각의 심장으로 느껴졌다고 한다. 지금 그에게 사각형은 깨지지 않는 자아이자 고요와 휴식의 공간이다.
전시장의 마지막 공간에서는 이번 전시의 네 가지 테마인 믿음, 소망, 사랑, 천지창조를 스트리트 댄스 크루인 프리즘무브먼트(FRZM MOVEMENT)가 몸의 언어로 재구성해 표현한 영상을 대형 LED(발광다이오드) 화면으로 보여준다. 프리즘무브먼트는 한국 최초로 세계 비보이 대회에서 우승한 퍼포먼스 팀이다. 기독교 신앙에 기반한 현대미술을 댄서의 몸을 통해 역동적 메시지로 표현한 이종 장르 간 협업이 신선하다. 선은 그에게 길의 의미다.
그는 “선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과거, 현재, 미래의 어떤 공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사각의 공간에서 눈을 감고 온전히 자신의 공간을 만들고 생각에 잠겨보라”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9일까지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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