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국가 힘 거덜 낼 '직권남용·배임 팬데믹'

입력 2020-12-03 17:08   수정 2020-12-04 00:06

공직사회가 직권남용죄로 난리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죄 수사를 지휘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의해 직무배제 조치를 당했으나 법원의 효력정지 결정으로 복귀했다.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예정된 상황에서 사퇴한 고기영 차관 후임으로 이용구 변호사가 임명됐다. 장관과 차관을 법관 출신으로 채운 법무부의 최대 현안은 직권남용죄를 물어 윤 총장을 징계하는 일이다. 추 장관도 시민단체로부터 직권남용죄로 고발돼 있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시키거나 권리행사를 방해하는 것으로, 형식적으로는 일반 직무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대한 자기 직권의 불법적 행사를 의미한다. 대법관과 대법원장을 합쳐 12년을 재임한 양 전 원장은 법원행정처장들과 함께 다수의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이 기소한 상고법원 건은 통상적 조직개편 문제다. 지방자치단체 간 매립지 관할권 건도 이상하다. 매립지 분쟁은 대법원이 단심으로 판결하도록 지방자치법이 정하고 있는데 관련 지자체에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도 함께 청구했다. 법원행정처 간부를 동원해 헌재의 동향을 감시했다는 것이 검찰 기소 내용이다. 헌재는 법률에 의해 행정안전부 장관이 정할 사항에 대해 과거 관할을 사유로 권한쟁의를 신청하는 것은 당사자 부적격이라며 각하판결을 내렸고 결국 대법원 단심으로 결정하게 됐다. 무리하게 기소한 검찰의 직권남용이 문제 될 판이다.

법원 주변에서는 검사의 실명을 밝힌 직권남용 비난 게시물이 난무하는데 그 내용에는 왜 기소했느냐와 기소 안 했느냐가 섞여 있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직권남용죄를 물어 직무배제 조치를 내리는 초유의 해프닝도 벌어졌다. 윤 총장 직무배제 사유인 직권남용 혐의에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물의 야기 법관’ 명단 활용도 포함됐는데 이는 검찰이 양 전 원장 재판에서 증거물로 제시한 것이다. 추 장관이 단행한 일련의 조치는 월성 원전 수사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PC 파일 444개를 감사원 조사 전날 파기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은 “지시받은 일은 없고 신내림 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윤 총장 복귀 다음날 감사업무를 방해한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직권남용죄는 업무상 배임죄와 함께 기소하는 사례가 많다. 공무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소추될 수 있는 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를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 이익을 취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하는 죄다. 회사 대주주와 대표이사에 대한 시민단체의 고발이 잦은 상황에서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단골’ 피고다. 이런저런 혐의를 엮다 보면 모순적 충돌도 생긴다. 삼성에버랜드 신주 우선배정에 대한 배임죄 논란으로 복잡했을 때 법조인 출신 삼성 임원의 분식회계 폭로도 터져나왔다. 필자는 2007년 12월 4일자 일간지 칼럼 ‘삼성 분식회계-배임 주장은 모순’에서 ‘결손기업을 흑자로 조작하는 분식’과 ‘그 기업 주식의 헐값 인수 배임’이 모순관계임을 밝혔다. 분식은 곧 드러나 주가 폭락으로 이어질 터인데 분식이 사실이라면 이를 알았을 대주주가 손해 날 주식 인수를 강행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였다. 결국 분식 폭로는 혐의없음으로 종결됐다.

부산지역 향판 출신 대법관으로 6년 임기를 마친 김신 동아대 석좌교수가 최근 《배임죄에 대한 몇 가지 오해》라는 저서를 출간했다. 배임죄는 그 이론의 복잡성과 모호성 때문에 국민이 죄의 성립 여부를 미리 알기 어렵고 법원도 심급에 따라 유무죄를 달리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기업 경영자가 배임죄 리스크를 두려워해 새로운 투자와 모험적 경영을 기피함으로써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저하시킬 위험을 경고했다. 공직자와 기업가의 사기를 꺾는 직권남용과 배임은 그 요건을 더욱 명확하게 규정하고 법원 판결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검찰은 추·윤 분란을 통해 역지사지(易地思之) 자세를 새겨야 한다.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지라”는 성경 말씀이 문뜩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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