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60·사진)는 3일 서울 회기동 KAIST 서울캠퍼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오너 경영과 재벌에 대한 오해가 계속 확산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경제 문제 중 대부분을 ‘재벌 기업들의 잘못된 지배구조’ 탓으로 돌리면서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이 교수는 지난 7월 재벌 관련 오해를 반박한 《재벌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다고》를 펴냈다.
그는 “재벌은 한국에만 있는 모순적인 집단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틀렸다”고 단언했다. 재벌을 ‘혈족 중심 세습 경영 집단’으로 정의하면 일본 등 아시아뿐 아니라 미국·유럽에서도 이 같은 기업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경영권 세습은 자식과 가족을 위해 일한다는 인간 본성에 맞는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전 세계 곡물시장 점유율의 40%를 차지하는 미국 카길 등은 6대째 경영권을 세습하며 우수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월마트와 폭스바겐, 포드, BMW, 미쉐린, 이케아 등 세계 굴지 기업들의 상당수가 가족 기업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미래를 내다보고 반도체 투자를 결심한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의 사례처럼 오너 경영이 책임성과 장기 투자 측면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보다 우수한 점이 많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재벌 개혁’을 명분으로 무리하게 대기업들의 경영권을 위협하면서 각종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정부가 문제 삼는 ‘문어발식 경영 확장’과 순환출자 등은 과거 외국 자본 유치가 어려웠던 상황에서 회사 규모를 확장하고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수단이었다”며 “이 같은 경영방식의 단점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개선될 문제를 정부가 억지로 해소하라고 압박하면서 기업가들이 어쩔 수 없이 편법을 저지르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불공정행위를 뿌리뽑고 싶다면 ‘재벌 개혁’이 아니라 하청 중소기업의 경쟁력 제고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원청 기업 ‘갑질’의 근본 원인은 중소기업들이 국제 시장에서 경쟁하지 못하고 원청 기업의 일감에만 의존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는 시장의 경쟁을 촉진하고 기업들의 뒤를 밀어주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실패가 사멸로 이어지는 조직은 전쟁 중의 군대와 기업밖에 없다”며 “기업체를 세우고 돈을 벌어본 적도 없는 정치권과 정부가 밤낮없이 치열하게 싸우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글=성수영/사진=김영우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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