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인 558조원 규모로 편성된 내년도 정부 예산이 ‘묻지마 사업’투성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 집행을 위한 법적 근거가 없거나 경제성을 따지는 예비타당성조사도 거치지 않은 사업이 대거 포함됐다. 내년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야가 한마음 한뜻으로 선심성 예산 편성에 앞다퉈 나선 결과라는 지적이다. ‘일단 밀어넣고 보자’는 식의 사업이 난무하면서 집행 현장 곳곳에서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세종 행정수도 완성 관련 예산도 법적 근거가 미비하지만 내년 예산에 대폭 반영됐다. 국회 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예산이 여야 합의 과정에서 기존 10억원에서 127억2700만원으로 증액됐다. 창의진로교육원 건립(111억500만원), 119특수구조단 청사 건립(25억원) 등도 아직 세종 이관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지만 세종 청사 관련 예산을 배정받았다.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고)에 대한 고용보험료 지원(594억4300만원)과 출산전후 급여(85억6200만원) 예산은 민주당이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약속한 ‘전 국민 고용보험’에 관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고용보험법 개정안 등 관련 법안을 주요 입법 과제로 지정해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이날에야 첫 소위 논의를 하는 등 법 개정 상황은 지지부진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예산 관련 근거법이 통과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정책적·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검증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고 예산이 증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교육부의 그린스마트스쿨 조성 사업은 예타를 거치지 않았는데도 내년도 예산안에 신규 사업 868억원이 반영됐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시급히 추진할 필요가 있는 사업”이라며 국무회의 의결을 통해 예타를 면제했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이를 이유로 심사 과정에서 “전액 감액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여야 합의를 거친 뒤 예산은 오히려 74억5200만원 늘어났다.
마찬가지로 예타가 면제된 비대면 서비스 플랫폼 구축 사업은 국회예산정책처로부터 “예산이 실제 집행될 수 있을지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받았다. 이 역시 여야 협의 과정에서 감액되기는커녕 6억원이 증액돼 2886억원으로 불어났다.
산업은행의 한국판 뉴딜 사업 지원 출자금 5100억원도 투자처가 마땅치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로 사모펀드(PEF)와 벤처캐피털(VC)에 자금 운용을 맡긴다는 방침이지만, 정작 PEF와 VC업계에서는 투자처가 확실하지 않고 투자 전략이 달라 ‘한국판 뉴딜 펀드’를 운용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기존 정부안(6000억원)에서 대폭 삭감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900억원 정도 깎이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깜깜이’ 예산이 정부의 입맛대로 쓰이는 눈먼 돈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소현/이동훈 기자 alp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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