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대기업 A사는 내년 사업계획을 짜면서 원·달러 환율을 달러당 평균 1150원으로 잡았다가 최근 1050~1100원으로 전면 수정했다. 이달 들어 달러당 1100원 선마저 무너진 데 따른 것이다. A사 재무담당 임원은 “손익분기점 환율이 달러당 1130원이어서 이대로라면 이익 목표 달성이 힘들다”며 “수출 전략을 전면 재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반기 들어 회복세를 보이는 수출이 환율 급락이라는 복병을 만났다. 글로벌 경기 회복과 기저효과 등으로 내년 수출도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떨어지는 환율이 큰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기업들은 환율 시나리오별 전략 수립에 나섰다.
각 연구기관도 내년 수출이 두 자릿수 안팎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산업연구원은 내년 수출 증가율을 올해 대비 11.2%로 추정했다. 산업연구원은 “내년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이 다소 줄어드는 가운데 중국의 경기 회복과 주요국 경기부양책 효과 등에 따라 수출이 반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해 코로나19에 따라 급감했던 수출은 4분기 들어 조금씩 회복 중이다. 11월 수출은 작년 동기 대비 4% 늘었다. 반도체(16.4%), 디스플레이(21.4%), 무선통신기기(20.2%), 2차전지(19.9%) 등이 증가세를 주도했다.
그러나 환율이 변수다. 지난 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4원90전 내린 1082원10전에 마감했다. 2018년 6월 12일(1077원20전) 이후 최저치다. 미국의 대규모 경기부양책이 연내 타결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따라 달러화 약세가 이어진 영향이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내년 미국의 신정부 출범으로 인한 불확실성 완화와 대규모 경기부양 기대감 등으로 달러화 약세가 완만하게 지속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수출 기업들은 최적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적정 환율을 달러당 평균 1167원으로 보고 있다. 손익분기점 환율은 달러당 평균 1133원이다. 그러나 최근 환율은 적정 환율은 물론 손익분기점 환율마저 밑돌고 있어 이런 추세가 장기화하면 수익에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다.
기업들은 달러당 △1100원 이하 △1100~1150원 △1150원 이상 등 세 가지 시나리오에 따른 사업 계획을 준비 중이다. 동시에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는 데 애를 쓰고 있다. 삼성전자는 수출입 때 현지 통화로 거래하거나 입금 및 지출 통화를 일치시켜 환포지션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고 있다.
수출 중소기업은 더 타격이 크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수출 중소기업 30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은 환율 10% 하락 시 영업이익률이 7%포인트 이상 떨어진다고 답했다. 적정 환율은 달러당 평균 1181원, 손익분기점 환율은 평균 1118원이라는 게 중기중앙회 분석이다. 김태환 중기중앙회 국제통상부장은 “3개월 전 주문을 받아 이제야 대금을 받는 중소기업은 대부분 손해를 보며 사업하고 있다”며 “환리스크 관리 등을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노민선 중소기업연구원 미래전략연구단장은 “원화절상 속도가 너무 빨라 중소기업들이 적응할 여력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에 이어 가장 큰 불확실한 요소로 환율이 부각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올해말과 내년초까지 환율 뿐만 아니라 유가와 수출 운임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며 “중소기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20%를 맡고 있는 만큼, 환율과 함께 유가 등도 종합적으로 살펴 대책을 마련해야한다”고 말했다.
김일규/안대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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