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피아·정피아의 진격은 동시다발적이다. 은행연합회, 생명보험협회, 손해보험협회, 금융투자협회, 여신금융협회, 저축은행중앙회 등 6대 금융협회 중 다섯 곳의 수장이 낙하산이다. 민간 출신은 나재철 금투협회장이 유일하다. 현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만 해도 6대 협회장이 모두 민간 출신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관·정피아의 ‘금융권 접수’라 부를 만하다. 협회장뿐만 아니다. 내부 출신이 맡았던 기업은행장은 9년 만에 관료에게 넘어갔고, 한국거래소, SGI서울보증에 전관(前官)이 입성하는 등 금융권 전반에서 낙하산이 확산일로다.
“인사 개입은 직권남용의 불법행위”라며 맹비난했던 문 대통령과 여권이기에 실망이 더 크다. ‘관피아는 안 된다’는 공감대는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굳건히 자리잡았다. 그런데도 세월호 트라우마 극복을 천명한 정부의 무차별 낙하산은 금융과 정치를 불신하게 만드는 심각한 신뢰 파괴 행위다. ‘낙하산 대기소’격인 금융위원회는 물론이고, 금융감독원의 반성도 절실하다. ‘낙하산 금지 선언’을 주창했던 교수 출신 금감원장은 ‘펀드 손실 100% 보상’ 등의 강압 행정으로 전관의 몸값을 올리더니 관피아 진격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넘쳐나는 관·정피아는 ‘규제본색’의 정부·정치권과 금융시장 거대 플레이어들 간 구조적 공생 관계의 방증이기도 하다. 5대 금융지주 사외이사 38명의 절반인 19명이 전관 출신이다. 최근 한 달 새 관·정피아에 접수된 굵직한 금융기관만 네 곳이건만 견제해야 할 공직자윤리위는 ‘관치금융 도우미’를 자처한 듯하다. 올해 접수된 재취업 심사 46건의 96%가 승인됐다.
낙하산을 내려보내면서 어떤 눈치도 보지 않는 이 정부의 처신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쭈뼛쭈뼛하며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이전 정부들과 확연히 다르다. 틈만 나면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더니 ‘우리 편은 예외’라는 것인가. 금융당국의 조치 하나에 수백억·수천억원의 수익이 좌우되는 규제 산업에서 관치가 횡행한다면 창의가 발휘될 자리는 없다. 한국 금융을 도대체 어디로 끌고 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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