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바이든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이 지난달말 한국을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 방문 때 대통령의 팔을 툭 치는 등 무례한 행동으로 유명한 그가 한국을 찾은 이유는 대부분 사람들이 추측하는 대로다. 전통의 동맹을 강조하는 바이든은 외교와 교역 양면에서 트럼프보다 훨씬 더 대하기 까다로운 상대가 될 수 있다. 미국이 일본 한국 등과 함께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리부터 일본과 한국을 방문, 중국의 영향력을 강화하겠다는 포석일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거의 내내 한국에 고자세를 보이던 중국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모처럼 한국에 먼저 손을 내민 셈이다. 외교란 원래 그런 것인 만큼 중국이 일본 한국으로 바쁘게 왕이를 보내는 상황을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문제는 중국을 대하는 한국 정부의 태도다. 2017년 말 문 대통령의 방중 때 이런저런 홀대를 받고 돌아온 뒤로도 한국 정부의 저자세는 바뀐적이 없다.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한한령 방공식별구역 침범 등에 대해서도 이렇다할 항의는 고사하고 꿀먹은 벙어리 노릇을 한 게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오직 시진핑 주석이 한국을 방문해 주기만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마치 그가 오면 엄청난 선물이라도 들고올 모양으로 말이다. 실제 정부는 지난해부터 ‘시진핑 방한’ 카드에 목을 매다시피하고 있다. 시진핑이 오면 ‘사드갈등’ 이후 쌓여온 양국 문제들이 한꺼번에 풀리기라도 할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하지만 시진핑은 문 대통령의 방중시에도 사드 보복을 곧 풀듯한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그 후로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시진핑이 한국에 올 지 여부도 불투명하지만 설사 온다하더라도 '선물 보따리' 따위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게 맞다. 그런데도 정부는 계속 공을 들여왔다.
올해 초 코로나가 우한에서 급속히 번지던 때, 의사들의 입국금지 권고에도 불구, 정부가 중국으로부터 입국을 차단하지 않았던 것도 시진핑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였다는 지적이 많다. 4월 총선을 얼마 안 남겨둔 당시로서는 총선 전 시진핑이 방한할 경우 총선에 결정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계산하에 코로나 유입을 막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진핑은 한국을 오지 않았다. 코로나 이유를 대지만 코로나 발생국인 중국 입장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다. 한국이 시주석 방한에 목을 매자 중국은 이를 무슨 미끼처럼 사용하는데 재미가 들린 듯도 하다. 싱하이밍 주한 중국 대사는 지난 6월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시 주석의 방한은 ‘커다란 사변’이 될 것”이라며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그는 당시 시기를 조율중이지만 연내에 방한이 이뤄질 듯 이야기했지만 결과적으로 허언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 한국과 일본을 찾은 왕이는 한중일 FTA 카드를 꺼냈다. 미국의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TP) 복귀가 예상되자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만으로는 부족했는지 미국을 견제할 추가 카드를 내놓은 것이다. 사실 지금 한국은 바이든의 당선으로 미국 중국 양쪽으로부터 일종의 '러브 콜'을 받는, 모처럼 외교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선 상황이다.
미국은 트럼프가 흔들어 놓은 동맹을 회복하기 위해 한국을 중시하고, 중국은 미국이 가치동맹으로 중국을 고립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의 역할을 주시하는 상황이다. 왕이가 서둘러 방한 한 것도, 방한 후 며칠 안지나 중국이 한국업체의 게임을 거의 4년만에 허가해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답답한 것은 우리 정부가 이런 상황을 활용하기는커녕, 여전히 시진핑 방한에 목을 매는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진핑은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박 2일로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취임한 지 얼마 안 된 그가 평양에 앞서 서울을 찾은 것은 한국이 이뻐서가 아니라 당시 국제정세와 양국관계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시 주석은 당시 북핵 불용을 재확인하고 북한의 4차 핵실험 후 추가 핵실험에 대해 확고한 반대 입장도 표명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외교 관계는 상대적이고 늘 바뀐다. 지금 다급한 것은 중국이다. 이럴 때 한국을 찾은 왕이에게 따질 건 따지고 요구할 건 요구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여전히 "시 주석이 언제 오느냐"에만 매달리고 있는 것 같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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