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8일)부터 수도권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됐다. 수도권 2단계 플러스알파(2+α) 카드가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자 불과 한 주 만에 다시 단계를 끌어올린 것이다.
정부는 이번 거리두기 단계 상향으로 수도권 하루 확진자를 100명대까지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8일 <한경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2.5단계 조치가 큰 효과를 보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지난달 말부터 1주간 일평균 지역발생 확진자가 2.5단계 범위로 들어왔지만, 정부가 '늑장 대응'에 나서면서 효과를 극대화할 골든타임을 지나쳤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때늦은 조치가 방역시스템 붕괴 우려까지 높이고 있다면서 "코로나19를 비롯한 다수 병증 환자가 사망하는 사태가 곧 수도권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3차 대유행'은 종전 1·2차 대유행과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제라도 선제 대응을 위한 3단계 수준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천은미 이화여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현재 수도권은 연일 300~400명 확진자가 깔린 상태다. 정부가 거리두기로 수도권 일일 확진자를 100명대로 만들겠다는 목표 자체가 의미가 없다는 얘기"라며 "강력한 효과를 보려면 이미 2주 전에 2.5단계로 격상했어야 했다"고 했다.
그는 "정부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포인트는 올해 봄과 여름처럼 거리두기를 강조하면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계절적 환경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생했다는 면이 엄연히 다른데 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선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며 "소극적 조치로 확진자 수가 2000명대까지 올라간 뒤 내려오지 못하는 일본의 양상을 따라가는 격"이라고 꼬집었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도 "2.5단계 조치로 일일 확진자 100명대로 가기에는 역부족이다. 겨울이라는 계절적 요인도 있지만 이미 생활 반경에서 다수의 집단 감염이 발생하고 있다"면서 "이미 사람들의 경각심이 낮아진 연말에 내놓은 조치가 모임, 행사 등을 전면 차단하기에는 여러가지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혁민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 또한 "이제야 현 상황에 맞춘 단계에 올라섰으나, 해당 조치로 확진자 수가 과거처럼 급격히 떨어지진 않을 것"이라며 "지금까지 정부가 거리두기 조정에 보인 지지부진한 면들이 국민들의 경각심을 낮추는 데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금이라도 선제 대응을 위한 3단계 수준의 방역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천은미 교수는 "검사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주말에 600명대의 확진자 수가 나오고 있다는 것은 평일로 따지면 1000명이 넘었다는 것이다. 무증상자까지 포함하면 3단계 기준을 이미 넘었다고 생각한다"면서 "확진자 증가세를 확실히 줄이려면 2주 정도 3단계 조치를 시행한 뒤 전체적 로드맵을 새로 짜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우주 교수도 "현재의 600명대 확진자는 이미 일주일 이전에 감염된 환자들로, 현재 실질적인 환자 수는 1000명이 넘었을 수도 있다"며 "아예 3단계 거리두기 조치로 굵고 강하게 상황을 잡아야 한다고 전부터 얘기를 했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가 상황 판단에 늦는 것"이라고 짚었다.
거리두기 3단계 격상 조치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추가적 조치가 필요하다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이혁민 교수는 "3단계 격상 조치에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추가적 방역 대책 보완책은 필요하다고 본다"며 "특히 다른 업종들에 비해 식당에 대한 조치가 미흡한 부분이 있는데 이해 안 되는 것들이 많다. 최소한 테이블 간 감염을 막기 위한 아크릴판 설치 등 논의는 이미 끝났어야 하는데 지지부진한 것들이 아쉽다"고 했다.
김우주 교수는 "현재 중환자실 병상이 턱 밑까지 차오른 상태다. 현장에 있는 의료진들은 이에 대한 심각성이 커 지속적으로 경고한 것인데 큰 변화가 없다"며 "2.5단계 효과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며칠 내로 올 초 대구에서 그랬던 것처럼 치료가 급박한 중환자들이 입원 못 하고 집에서 사망하는 현상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는 생활치료센터가 아닌 중환자 병상이다. 임시병원을 통해 병상을 대폭 늘려야 한다"면서 "물론 경제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의료대응 능력과 코로나가 먼저다. 그래야 다음이 있다"고 거듭 역설했다.
실제로 중환자 병상 부족 사태는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코로나19 중환자가 당장 입원할 수 있는 병상은 5일 기준으로 전국에 총 55개만 남은 상태다. 이는 전체 중환자 병상 550개의 10%에 불과한 수치. 이중 수도권의 가용 병상은 20개뿐이고, 대전·전북·충남·전남지역에는 단 한 개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다. 현실적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10~14일 정도로 파악된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정부가 스스로 정한 원칙에 맞는 선제적 조치, 일관된 메시지 전달 등의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되풀이 역설했다.
이혁민 교수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설정했으면 확진자 수에 따라 즉각적으로 단계를 격상하는 것이 국민과의 신뢰를 높이는 방법이다. 그것이 국민들이 대책에 순응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면서 "만들어둔 거리두기 단계도 여러 이유로 적용하지 않다 보니, 전반적 대응 체계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 국가의 강력한 메시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빠르게 격상하고 천천히 완화해야 하는 조치가 반대로 되고 있다"고 꼬집은 김우주 교수는 "표면적 문제만 생각하는 정부의 괜찮다는 말과 소극적인 거리두기 조치는 사태를 곯게 할 뿐이다. 코로나 사태가 1년이 다 돼가는 지금에도 정부가 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있으나 갑갑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방역 대책에 전문가들 의견을 적극 반영해줄 것도 당부했다. 김우주 교수는 "방역에서 가장 중요한 '타이밍'을 지키려면 과학적 근거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정부가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정부가 거리두기를 결정하고 질병관리청(질병청)은 이에 깊게 관여하지 않는 모습"이라며 "방역 대책만큼은 질병청의 목소리가 우선돼야 한다. 이것이 잘 되고 있지 않으니 되로 갚을 것을 말로 갚는 상황이 줄 잇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잡기 위해 방역 체계의 변화와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천은미 교수는 "무증상 감염자가 많은 현재 사태에서 보자면 '매스 스크리닝(집단선별검사)'이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현재 우리의 일일 검사 건수는 2만건이 채 안 된다. 무증상 감염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고 계속해서 뒤늦게 역학조사를 한다는 것은 전혀 새로운 대책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이제는 거리두기만으로 버티기 힘들다. 항원 검사, 항체 치료제, 백신 등 보조 수단으로 도입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적절히 조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코로나는 반복적 사이클이 있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현재 방역 대책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사회적 거리두기로 150명으로 줄이겠다는 말뿐, 이후의 대책이 없다는 것"이라며 "거리두기 외의 전체적 로드맵이 나와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