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를 바짝 치켜세운 검은색 강아지를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은 소녀가 다정하게 바라본다. 다른 배경은 없다. 강아지와 소녀가 세로 16.8㎝, 가로 9.0㎝의 길쭉한 화면을 가득 채웠다.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이 종이에 펜과 잉크, 유화물감으로 그린 1950년대 작품 ‘소녀와 강아지’다. 종이에 그렸는데도 특유의 화강암과 같은 마티에르가 살아있다.
박수근을 비롯해 김환기 천경자 윤중식 장욱진 최욱경 오윤 등 근현대 주요 작가들의 종이 매체 작업이 경매에 나온다. 서울옥션이 오는 15일 올해 마지막 현장 경매로 진행하는 제158회 미술품 경매의 ‘웍스 온 페이퍼(Works on Paper)’ 섹션을 통해서다.
이 섹션에는 연필, 잉크, 콩테, 유화물감뿐만 아니라 목판화 작품 등 종이매체를 활용한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이 출품된다. 3000만~5000만원(이하 추정가)에 나온 ‘소녀와 강아지’를 비롯해 구아슈와 연필로 그린 김환기의 1959년 작 ‘무제’(1000만~2500만원), 최욱경이 목탄으로 그린 ‘무제’(1000만~2000만원), 장욱진이 마커 펜으로 그린 가족도(400만~700만원) 등 17점이 새 주인을 찾는다. 서울옥션 관계자는 “종이매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각기 다른 필치와 개성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만날 수 있다”며 “김경, 정규, 주경 등 20세기 초반 작가들의 종이 작품은 매우 드문데도 평가절하돼 있어 사둘 기회”라고 설명했다.
이번 경매에는 총 191점, 약 120억원어치의 작품이 출품된다. 일본 미술계의 거장이자 현존 여성작가 중 경매 최고가 기록을 갖고 있는 쿠사마 야요이(91)를 비롯해 미술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일본 작가 매드사키(46), 아야코 로카쿠(38)의 작품이 주목된다.
쿠사마의 작품으로는 2005년 작 노란 호박 ‘Pumpkin’과 1996년 작 ‘Flowers’ 등 3점(추정가 별도 문의)이 나왔다. 개성 있는 아티스트 매드사키의 2017년 작 ‘Mirror’는 일본 다다미 방을 배경으로 화장을 고치고 있는 여인을 특유의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 가로, 세로 190㎝의 대작으로, 3억~5억원. 일본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은 듯한 소녀가 등장하는 아야코 로카쿠의 ‘무제’는 1억6000만~2억4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는다.
이우환(84) 천경자(1924~2015) 이중섭(1916~1956) 등 한국 거장들의 작품도 대거 출품된다. 커다란 화면 중앙의 주홍색 점 하나가 그라데이션으로 표현된 300호 대작 ‘대화’를 비롯한 8점의 이우환 작품이 그의 예술 세계를 보여준다.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가 1977년에 그린 ‘여인의 초상’은 머리에 꽃 장식을 얹은 여인이 우수 어린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초상화를 넘어 자신의 상황과 경험을 집약한 자화상이자 내면에 위로를 전하는 초월적 여인상이다. 5억~8억원. 이중섭이 말년에 일본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빠른 필체로 그린 ‘어린이와 새와 물고기’(1954)도 5억~8억원에 나왔다.
고미술 분야에는 단원 김홍도의 ‘산수도(山水圖)’(5000만~1억원), 겸재 정선의 ‘백악부아암(白岳負兒岩)’(6000만~1억5000만원)을 비롯한 서화, 도자기, 공예품 등이 다양하게 출품됐다. 특히 내고 박생광(1904~1985)의 특별 섹션에는 ‘열반’ ‘금강산 보덕굴’ ‘범(虎)’ 등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8점이 출품된다.
오는 17일에는 올해 마지막 온라인 경매 ‘제로베이스(ZEROBASE)X아트경기’를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연다. 제로베이스 경매는 기존 경매 기록이 없더라도 전시 이력과 작품성 등을 바탕으로 작가를 발굴해 미술시장에 소개하는 자리다. 출품작 경매는 모두 0원에서 시작하며 이번에는 경기문화재단과 손잡고 이상미 박주영 김민주 김태형 김건일 조문희 등 경기 지역 작가 6명의 작품 65점을 경매에 부친다.
제158회 미술품 경매의 프리뷰는 오는 15일까지, ‘제로베이스X아트경기’의 프리뷰는 오는 10~17일까지 서울옥션 강남센터에서 열린다. 관람료는 없다. 온라인 VR 전시장 관람, e도록 보기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경매는 실시간 응찰은 물론 서면, 전화로도 참여할 수 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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