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 경영하라"…엑슨모빌 저격한 행동주의펀드

입력 2020-12-08 17:21   수정 2020-12-09 02:58

‘행동주의 투자(activist investment)’ 베테랑들이 “친환경 에너지 트렌드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라”며 미국 에너지기업 대표 격인 엑슨모빌을 겨냥하고 나섰다. 최근 세계 각국이 30~40년 안에 ‘탄소중립(넷제로)’을 이루겠다고 잇따라 공언하는 가운데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에너지 기업에 대한 월가 투자자들의 대책 요구가 거세지는 분위기다.

“신재생에너지에 투자하라”
7일(현지시간) CNBC에 따르면 이날 미국 행동주의 투자기업 엔진넘버원은 엑슨모빌 이사회에 “풍력기업 출신의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신재생에너지 전문가 등 신규 이사 네 명을 선임하라”는 공식 서한을 보냈다. 10명으로 구성된 엑슨모빌 이사진 중 40%를 교체하라는 요구다. 엔진넘버원은 “엑슨모빌이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가치 창출을 위해 더 나은 포지션을 구축해야 한다”며 새 에너지 트렌드에 맞춰 신재생에너지에 많이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낡은 경영전략으로 실적이 연일 악화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엔진넘버원은 엑슨모빌에 석유 시추 등 수익이 하락세인 사업에 지출을 줄여 배당금을 보전하라고도 요구했다. 엔진넘버원 관계자는 CNBC에 “세계 각국이 화석연료와 거리를 두고 있다”며 “수십 년 안에 망해버릴지 모르는 (엑스모빌 같은) 기업의 사업 방향을 바꾸는 게 장기 목표”라고 설명했다.

엔진넘버원은 미국 2위 연기금인 캘리포니아주 교직원연금(CalSTRS·캘스터스) 지원을 확보했다. 이 연금이 보유한 엑슨모빌 주식 규모는 3억달러가량이다. 엑슨모빌 시가총액은 1730억달러에 이른다. 엔진넘버원은 제안에 힘을 싣기 위해 래리 핑크 블랙록 CEO에게도 서한을 보내 조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록은 지난 1월부터 기후 관련 대응책을 요구하는 투자자 연합인 ‘기후행동 100+’에 동참하고 있다. 기후행동 100+는 총보유자산이 32조달러에 달한다.
“석유기업, ESG 전략 내놔라”
최근 석유기업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전략을 요구하는 주주 행동주의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작년 에너지업계 주주총회 시즌에서 나온 기후변화 대응 관련 주주결의안은 75건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3년 17건에 비해 네 배 이상으로 늘었다. 당시만 해도 환경단체 등을 위주로 ESG 전략 요구가 나왔지만 지금은 기관투자가들이 앞장서고 있다. 세계 각국이 저탄소 정책을 펴고 있어 ESG 전략 부재가 실질적인 경영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주요 인덱스펀드 운용 그룹인 블랙록과 뱅가드 등도 기후변화 대응 기준을 투자에 적용하고 있다.

지난달 말엔 영국의 유명 헤지펀드 매니저인 크리스 혼 TCI헤지펀드 창립자가 미국·유럽 기업 수백 곳을 대상으로 기후변화 대응 관련 계획을 요구하겠다고 공언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공개하고 감축 계획을 매년 공시하라는 요구다.

작년엔 기후행동 100+가 주주총회를 앞두고 로열더치셸에 기후변화 대응책을 강력히 요구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량을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냈다. 로열더치셸은 이후 재생에너지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거대 광산기업 글렌코어도 투자자들의 압박에 석탄 생산 상한을 두기로 했다. 공급을 제한해 석탄 가격을 떠받치면서 탄소 배출량도 줄이겠다는 설명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최근엔 투자자들이 기업 경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강력한 ESG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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